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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가) 왠지 고향같네 눌러살기로 했죠

Posted August. 26, 200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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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고향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아예 정착하고 싶은 나라가 있다. 그래도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본국을 마다하고 한국에 남고 싶어 했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그간의 학습 또는 편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과히 친절하지도 않고, 서울의 생활환경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교통이 나쁘고 외국인에 대한 반감도 만만찮은 곳이다. 글로벌 기업 본사에서 일한다는 건 잘나간다는 의미일 텐데, 이를 거절하다니. 과연 한국의 어떤 점이 그들을 끄는 것일까.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한국에 뿌리를 내린 외국인 CEO 세 사람을 만나 봤다. 엘카코리아의 크리스토퍼 우드(45) 지사장, 헨켈코리아의 새미 루트피(53) 사장,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의 번하드 브렌더(59) 총지배인이 그들.

우드 엘카코리아 지사장

에스티로더, 클리니크, 맥 등 화장품 유통업을 하는 엘카코리아의 우드 지사장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지사장을 지낸 적이 있다.

일본 에스티로더 지사장으로 갔던 그가 올 7월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것도 뉴욕 본사 근무를 거절하고.

이유요? 고향처럼 편안해서죠.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일본어도 할 줄 알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외국인들처럼 영어만 썼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은 너무도 다르다. 한국인은 결과를, 일본인은 과정을 중시한다. 경영자로서는 한국인 부하직원들이 편하다. 일본인은 변화를 너무 싫어하는 반면 한국인은 환호한다.

그는 또 한국인은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을 보면 호의적이지만 일본인은 잘났어, 정말 하는 표정을 짓는다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변화되기 힘든 일본의 국가 미래가 걱정된다는 게 우드 지사장의 말이다.

그동안 한국은 많이 변했다고 한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졌고 백화점은 경기불황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

그는 백화점이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즐거움과 가치를 파는 곳이 돼야 한다고 본다.

루트피 헨켈코리아 사장

루트피 헨켈코리아 사장은 1989년 10월 김포공항에 내렸다. 이집트인으로 호주에서 자란 그는 여름인 호주와 달리 가을이 깊어가던 한국의 썰렁한 날씨와 휑한 공항 주변의 풍경에 맙소사, 도대체 내가 어디에 와있는 거지?라며 기겁을 하고 말았다.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건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라서 끈기 있고 현명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과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죠.

언제부터 한국이 좋아졌냐는 물음에 나온 대답이다. 그는 지난해 헨켈 본사와 은퇴할 때까지 한국에 남는다는 종신계약을 했다.

본사에서 임원들이 오면 꼭 앉아서 먹는 식당으로 안내해 젓가락을 사용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에 대해 바닥에 앉는 게 불편하다 김치가 짜다며 이런저런 불평을 하지만 난 그냥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선희의 J에게를 특히 좋아하며 아리랑, 상모돌리기, 북춤에도 흠뻑 빠져 있다.

루트피 사장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자동차 소음방지제 등을 생산하던 홍성화학과 실리콘 전문기업인 럭키실리콘을 인수한 뒤 호주 중국 등지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외교관처럼 한국과 본사를 연결해 한국의 경쟁력을 세계에 마케팅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브렌더 밀레니엄서울힐튼 총지배인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의 브렌더 총지배인은 올해 초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2002 한일월드컵을 치르고 난 뒤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받아서 유명해진 바로 그 지위다. 서울 명예시민이 된 외국인은 300여 명.

명예시민답게 그는 얼마 전 광복절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인근에서는 유일하게 집 밖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올해로 15년째 체류 중인 그는 지난해 하와이로 갈 기회가 생겼지만 한국에 남기를 자청했다.

주말이면 한강에 나가 자전거를 타는 걸 특히 좋아한다. 많은 시민들이 수영하고 인사하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이게 바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얼마 전 여름휴가로 고향인 독일에 다녀왔다. 2주가 지나 돌아올 때가 되자 그는 딸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제 집에 가자.

브렌더 씨는 주방장 출신이라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미식가들만 모인 고급 사교클럽 쉐인 데 로티세르의 서울지부 회장이다. 124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모임의 서울지부는 주한 외국 대사들, 특급호텔 총지배인들, 교수, 신라호텔 이부진 상무 등 160여 명이 회원이다.



하임숙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