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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 빅보이스

Posted August. 13, 200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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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어느 날 아침, 독일 베를린의 한 호텔 레스토랑. 작은 사내가 뒤뚱거리며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기자가 다가가자 사내는 갑작스러운 동양인의 접근에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크바스토프 선생이죠. 뵙게 돼 반갑습니다. 저는 베를린 필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래틀은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죠. 인터뷰 잘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도 꼭 한번 와서 노래를 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악수를 청할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손이 어깨에 바짝 붙은 장애인인 그가 악수를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에코상과 두 차례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세계 정상급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그와의 짧은 만남이었다. 이 책은 키 132cm의 단신에 손가락이 7개밖에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 우뚝 선 이 작은 무대영웅의 자서전이다.

그는 1959년 팔 다리가 없다시피 짧은 상태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를 임신한 동안 탈리도마이드(1950년대 입덧 방지제로 애용되다 기형아 출산 부작용으로 판매 중지된 약)를 복용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혼자선 일어설 수도, 용변도 볼 수 없어 땀과 대소변으로 범벅이 되는 어린 아들을 정성껏 닦아 주며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그의 집은 불행에 짓눌린 어두운 가정은 아니었다. 부모는 음악 듣기와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성악도 출신인 아버지가 TV 아마추어 가곡자랑 대회에서 입상한 뒤 노래와 함께하는 가족의 생활은 흥겨움을 더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던 토마스는 친절하고 유능하며 아름다운 소프라노 샤를로테 레만 선생의 지도 아래 정상의 성악가로 꿈을 키워 나갔다.

그에게 세상이 마냥 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음대 입학을 거부하는 학장들, 콩쿠르에서 그에게 지자 네가 장애 때문에 혜택 받은 거야라며 야유하는 경쟁자들. 그러나 그는 기를 꺾어 놓는 야유와 격려를 위한 조언을 구분할 줄 알았다.

독일 음악비평계의 황제(Kaiser)로 불리는 요아힘 카이저가 아직 표현력과 열정, 조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그는 오히려 나를 제대로 된 성악가로 대접하는구나라고 힘을 냈다.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선 그에게 카이저는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암포르타스 왕 연기가 마치 자신의 괴로움을 형상화한 듯하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오늘날 50cm 높이의 대()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이 모든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꾸려 가기만 한다면 부모님은 더 바랄 게 없으시단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