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대표이사로부터 온 편지

Posted May. 28, 2005 03:26,   

ENGLISH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폭풍에 온 사회가 기우뚱대던 1998년 여름, 삼성중공업의 안복현 건설기계부문 총괄 대표이사 겸 부사장에게 제일모직 재건 임무가 떨어진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모기업으로 한국 경제사의 굴곡을 함께해 온 회사였지만 1990년대 중반 들어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그룹 내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상황이었다.

회사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사장으로 취임을 하자마자 부지런히 사업장을 뛰어다니던 안 사장은 직원들의 차갑고 어두운 얼굴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들의 표정에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이니 그저 잠시 머물다 간다는 심정으로 월급이나 기다리자는 생각이 역력했다.

마음에 병이 든 직원들, 그래서 아파하고 있는 회사, 과연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안 사장은 e메일을 쓰기로 했다. 직원들을 독려하고, 그때그때 회사 현황을 투명하게 알리며, 생산 현장의 말단 여사원에게까지도 사장의 생각이 명확히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안 사장은 일단 회사가 위기라는 것을 솔직하게 알렸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전 사원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를 실천했다. 그의 진심은 서서히 직원들의 마음을 녹였고 결국 혁신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끌어내는 엔진이 되었다.

원가 절감을 이뤄낸 직원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적자사업을 철수할 때는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절박함을 호소했다. 직원 배려가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사장 스스로가 후배를 아끼는 선배가 되겠다고 수차례 다짐했고 솔직한 자기반성도 서슴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가 2004년 퇴임할 때까지 6년간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편지 가운데 82통(원고지 7000여 장 분량)을 묶은 책이다. 적자기업을 성공적으로 바꾼 한 최고경영자(CEO)의 헌신과 열정,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노력은 결과로 나타났다. 취임 1년 만에 회사는 440억 원 적자에서 480억 원 흑자로 돌아섰고 2000년 800억 원, 2001년 1200억 원, 2002년 1600억 원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그의 경영 기법은 부실사업 축소와 미래사업 중심의 구조개편, 정보화, 물류혁신 등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경영은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른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성공리에 추진했다는 혁신기법일지라도 기업의 몸 즉, 직원들의 이해와 참여가 없다면 헛일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혁신의 시작과 끝은 결국 직원들의 마음을 사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임을 이 책은 실감나게 보여준다.



허문명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