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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축복받는 죽음

Posted February. 02, 20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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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존경하는 어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기쁜 일이 생겨 연락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92세 되신 아버님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으나 그분의 말씀이 진심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6형제를 남기시고 자는 듯 편안히 세상을 떠나셨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어른이신가. 상주()는 신문에 부고기사를 내는 것도 굳이 사양하신다.

한 종합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가보니 6형제가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덜렁 아들 혼자서 손님을 맞거나 사위가 상주를 대신하는 상가에 비해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며느리 손자 손녀들도 고인의 죽음을 담담한 가운데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님들도 애써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됐다. 너나 할 것 없이 참 복 많은 어른이시다는 인사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산소도 미리 마련해 두셨다고 한다.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는 자식은 사주팔자에 있다고 한다. 오래 부모를 모신 효자 효녀라고 해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부모가 돌아가시고, 가출한 불효자식이 잠시 집에 들렀다가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들 골프 대회에 나가는 데 지장이 될까봐 경기가 끝난 뒤 임종 소식이 닿게 한 노모도 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눈을 번쩍 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노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 말도 있다.

매일 아침 동네 뒷산 중턱 약수터에서 뵙는 동네 어른들은 좋은 계절 골라, 자식들한테 누 끼치지 않고, 자는 듯 평화롭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생의 마지막 소망이라고 하신다. 평소 화목했던 집안이 부모의 치매나 질환으로 부모 자식 간에 서로에게 잔뜩 상처만 안긴 채 작별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는 것이다. 잘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