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의 웰빙이나 10억 만들기 열풍처럼 행복에 대한 추구는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에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을 놓고 쾌락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금욕과 절제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인생관을 반영하는 시각이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가 지상에 온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이 말은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제 행복을 두려워 말자는 어느 구호에 나타나듯이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고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행복의 묘미는 돈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회학자 벤호벤은 행복이란 개인이 자기의 삶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다. 행복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는 없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 부자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불행한 것이 문명과 경쟁 때문이라고 여기고 전원생활을 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여기에도 모순은 있다. 돈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듯이 느림과 비움도 행복의 보증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 본능에는 경쟁과 속도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한다. 스포츠에서 자신이 응원한 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경쟁 본능이고, 폭주족이 스피드를 즐기는 것은 속도에 대한 본능이다. 행복은 여러 본능이 충족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느리게 사는 것이 사람에 따라선 지루할 수도 있다. 행복이란 이처럼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고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
서울시민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부유층이 많이 사는 강남과 다른 지역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행복의 불규칙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행복지수의 엇비슷함에 마음 놓을 게 아니라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 절실한 이유다. 정부가 맡은 대표적인 역할이 국민 행복의 증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을 지금처럼 끝없는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것은 큰 잘못이다. 행복이 화두가 되는 21세기에는 행복지수가 곧 정부의 성적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