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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휴가 나눠 가기

Posted August. 11, 2003 21:54,   

8일이 입추()였고 광복절인 15일은 말복()이다. 말복 다음 입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입추가 지난 뒤에 말복이 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이치다. 한두 차례 무더위가 더 남아있다는 예고인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휴가는 끝물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 도심의 차량 통행도 부쩍 늘었다. 다음주부터는 동해안에 몸을 담그기가 조심스러워질 테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결에도 어느새 가을 기운이 배어 있다.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은 좋았다기보다는 여전히 시끄럽고, 더럽고, 무례했다는 편이다. 월드컵 때 수백만명이 응원을 마친 후 휴지 한 점 없이 깨끗이 치워진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를 보고 한국민의 저력에 가슴 뿌듯해했던 이들도 여름 휴가지를 다녀와서는 대한민국은 아직 멀었어라고 자탄한다. 회 한 접시에 20만원을 주었다거나 하룻밤 30만원짜리 민박집에서 새우잠을 잤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좁은 나라에서 여름 한철 몰아서 휴가를 가는 패턴 때문이다.

휴가 집중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해마다 여름철이면 휴가 몰아치기가 여지없이 되풀이된다. 휴가를 나눠서 가는 데 대한 시스템적 접근이 없는 탓이다. 우선 하계 및 동계 휴가로 이원화돼 있는 현재의 휴가 제도를 연간 할당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년 초 자신이 휴가를 가고 싶은 달을 골라 선택적으로 휴가 기간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수욕철인 78월이나 스키시즌인 122월에 휴가를 가는 사람보다는 그 밖의 달에 휴가를 가는 사람에게 휴가비 지급을 늘리거나 기간을 연장해 주는 메리트시스템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중고교생에 대한 교육당국의 배려다. 미국에서는 학기 중 부모 동반 여행을 현장학습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있고 해당 휴가지에서 할 수 있는 과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여행을 많이 해 본 이들 중에는 11월을 가장 이상적인 시기로 꼽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인 데다 어느 곳을 가든지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과일과 생선도 제 철이 있듯이 산과 들도 특별히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법정 스님은 11월의 강진 다산초당 주변 경치를 첫손으로 꼽은 적이 있고, 유홍준 교수는 그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11월 중순 경주에서 감은사로 넘어가는 감포가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바 있다. 내년에는 11월 휴가자가 부쩍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