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대선출마 공식선언을 보면서 우리는 10년 전 정 의원의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대권 도전을 떠올렸다. 정치개혁을 비롯한 정 의원의 출마 명분이 아버지의 정치 슬로건을 상속한 듯해서만은 아니다. 아버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 의원이 국민 심판을 받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에 생각이 미쳐서다.
첫째, 수권기반을 갖춰야 한다. 정 의원의 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국회의원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국정을 홀로 운영할 수는 없다. 정 의원측은 다음달 중에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끌어모아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먼저 그렇게 하고 출마선언을 하는 게 옳았다. 개인적인 인기나 변덕스러운 바람에 의존해 집권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대선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담당할 집권세력을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와 완전히 절연해야 한다. 정 의원은 소유주식을 신탁하고 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그 정도로는 눈가림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과거 정 회장도 주식소유권 포기 공증까지 했지만 현대 임직원의 선거운동 동원은 물론 현대 비자금의 선거자금 유용까지 문제돼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는가. 또 그로 인해 경제는 얼마나 휘청거렸는가. 정 의원이 깨끗이 소유주식을 처분하고 지분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의 정경()분리 의지를 믿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셋째, 정치적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 의원은 그동안 꽤 어지러운 정치행보를 보여 왔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신당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여기저기 손을 내밀고 있긴 하나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도 메시지도 분명치 않은 것이다. 있다면 반() 이회창, 비() 노무현이라는 정치게임논리 정도인데, 그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