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반. 소광리 숲에는 안개가 옅게 드리워졌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숲. 적막하리만큼 고요했다. 그런 숲의 침잠이 깊은 계곡에서 울려 퍼지는 청아한 새 울음소리, 낙엽더미로 내지르던 어린 족제비의 바스락거림에 무참히도 깨진다. 그렇다 해도 아쉽지 않다. 숲에서의 이런 소음은 자연이 들려주는 멋들어진 음악이기 때문이다. 침묵이 있어 아름다운 숲.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다는 선가()의 역설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여기다.
6월 혹독한 가뭄 중에 찾아온 소광리(경북 울진군 서면) 토종 소나무 숲. 피부로 느껴지는 촉촉한 아침 습기가 어찌 그리도 상쾌하던지. 너럭바위를 타고 돌며 콸콸 소리내어 흐르던 소광 대광의 계곡 물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계곡의 숲 양편. 우람하고 훤칠한 토종 금강 소나무가 그득했다. 대개 토종이라 하면 왜소 빈약하다고 지레짐작하는 우리네 생각에서 소나무도 예외는 아닐 터. 바위에 뿌리박고 몸체는 뒤틀릴대로 뒤틀린 아슬아슬한 자세로 천년풍파 인내해온 낙낙장송의 모습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토종이라 하면 왜소함부터 떠오르게 마련. 그러나 그런 짐작은 소광리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뒤틀린 소나무는 단 한 그루도 찾아 볼 수 없다. 하나같이 곧게 뻗은 쭉쭉 빵빵에 기골이 장대한 떡대, 우람한 킹카 소나무 뿐이다. 이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강 소나무이며 산림청이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해 후세에 길이 보전하려는 순수 토종이라니. 복원 공사중인 경복궁의 기둥감으로 이곳 소광리 금강소나무가 선정된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토종의 기상이 이렇듯 담대하고 장대하니 소광리 소나무 숲에서는 신바람이 절로 일어 아무리 걸어도 피곤하지 않은 듯 하다.
소광리 심산의 계곡과 능선 산정 등 온산을 뒤덮고 있는 토종 금강 소나무숲으로 가는 길. 그 초입은 우리나라 명승 1호인 불영계곡에 있다. 계곡 아래 바위를 훑으며 흐르는 물길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36번 국도. 봉화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불영사를 지나 오른 편으로 917번 지방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소광리 천연보호림으로 이어지는 계곡길 입구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구간은 금강소나무 야외전시관까지 총연장 13.9. 대광천 계곡을 따라 무려 22차례나 개울을 다리로 넘나들며 가는 멋진 임도는 오지마을 소광리와 천연보호림 금강소나무 보호구역 팻말(입구부터 9), 화전민정착촌과 금강소나무 관리소를 지난다.
숲의 생태를 연구하는 전영우교수(국민대산림자원학과)는 소광리 소나무박사다. 소광리 숲에 대해 묻자 한국 소나무의 대표적인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소나무 한 그루로 지은 집과 당산(토지나 부락의 수호신)소나무, 그리고 황장봉표(), 이 세가지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했다. 소나무가 얼마나 우람하면 한 그루로 집 한 채를 짓는지, 소나무가 마을 수호신이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네 삶에서 차지하는 소나무의 위상을 알 수 있다는 것.
또 왕족의 관을 짤 속이 누런 질 좋은 소나무(황장)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그 경계를 글로 써(봉표) 바위에 음각한 경계표석인 황장봉표는 바로 이곳 소나무의 품질이 최고임을 상징한다. 봉계표석은 소광마을을 지나 다리 두 개를 건넌 계곡의 물가(마을로부터 1.6 지점)에 있다.
차단기가 내려져 차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그 숲 속 빈터에는 금강소나무 야외전시관이 있다. 수령 500년의 거송, 천연보호림 안내판, 소나무의 속내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토종과 일반 소나무를 켜서 잘라 둔 전시막도 있다. 임도는 봉화군 석포면과 경계인 삿갓재 능선을 넘는데 산림청 차량 외에는 일절 차가 다닐 수 없어 트레킹하기 좋은 코스다. 차를 두고 임도를 따라 삿갓재로 10분(1.2)정도 오르다보면 보기에도 시원스레 하늘을 향해 쭉쭉 뻣은 멋진 토종 소나무가 계곡과 능선에 가득하다. 토종 소나무 관찰림을 벗어나면 숲과 계곡 풍경을 눈 아래로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펼쳐진다. 아침 일찍 트레킹에 나섰다면 고개길에서 멀리 남동편으로 동해를 등지고 병풍처럼 산자락을 펼친 통고산(낙동정맥)의 운해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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