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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정체성 담은 소설, 딸이 커서 읽었으면

韓 정체성 담은 소설, 딸이 커서 읽었으면

Posted March. 20, 2024 07:59,   

Updated March. 20, 202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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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이 담긴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네 살인 제 딸이 커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동소설 ‘기프티드 클랜(The Gifted Clans)’ 시리즈를 쓴 한국계 뉴질랜드 소설가 그레이시 김(38·김성은)이 최근 주한뉴질랜드대사관 초청으로 양국 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8일 서울 중구에 있는 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김 작가는 “한국 문화는 이야기거리가 정말 풍부해 가져다 쓸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세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간 그는 2019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대표작 ‘기프티드 클랜’ 3부작(2021∼2023)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국계 청소년 마법사들이 펼치는 모험담을 담았다. 2010년대생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NYT 어린이도서 부문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김 작가는 “도깨비와 호랑이가 나오는 이야기를 할머니가 자주 들려주셨다”며 “내 역할은 나만의 고유한 감각을 덧대 미래 세대에게 이야기의 바통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프티드 클랜엔 재치있게 변주한 한국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마법 능력이 없는 주인공을 지칭하는 표현은 ‘사람(saram)’이며, 아이들은 미국의 대표적 한국 마켓체인인 ‘H마트’ 치킨 코너를 통해 마법사원으로 들어간다. ‘귀신(gwisin)’ 전용 모바일메신저로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화하는가 하면,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치유 능력을 지닌 ‘곰 종족’의 수호신으로 등장한다.

김 작가는 뜻하지 않은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뉴질랜드 외교관으로 약 10년 동안 중국과 대만 등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베이징에서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 뒤 몇 개월 동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하며 “어른이 된 뒤 잊고 지냈던 호기심과 마법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최근 영미권 문학이나 영화 등 문화계 전반에서 불고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민)’ 열풍에 대해선 “디아스포라를 직접 경험하는 이들은 많지 않지만, 인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는 보편적 감정이라 울림이 큰 것 같다”고 짚었다. 김 작가는 “기프티트 클랜 역시 가족에게 인정받고 마법세계에 소속되려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다뤘다”며 “이민자 서사의 물결이 풍부해진 덕분에 즐거움과 마법에 대해 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기프티트 클랜은 올해 한글로도 번역돼 국내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