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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촌을 일류상품으로

Posted February. 21, 200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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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늦게 운동장을 돌다 보니 어느새 맨 앞을 달리고 있었다.

일본 혼슈()의 중심부 동해에 잇닿은 가나자와() 시. 인구 45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명망이 높은 이 도시의 오늘을 두고 시민들이 짐짓 자부심을 감추며 하는 말이다. 가나자와의 성공은 역발상의 발전 모델이다. 에도()시대 마에다 한()의 중심지로 400년간 번성했던 이 도시는 메이지() 이후 근대화에서 소외되며 흔한 시골 마을로 퇴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나자와 시민들은 그 느림을 어느 도시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전통산업을 도시의 경제 기반으로

가나자와의 첫출발은 문화의 보존이었다. 근대화가 가나자와를 비켜간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기도 이 도시는 조준하지 않았다. 가나자와 시는 종전이 되자 마치 준비라도 했던 듯 일본 전국에서 가장 먼저 문화재보존조례를 제정했다. 에도시대, 밤이면 게이샤들의 웃음소리가 흐드러져 게이샤거리로 불렸던 히가시차야() 거리는 일본 전통차와 지역의 특산물을 파는 거리로 재정비됐다. 옛 무사들이 활보하던 거리인 나가마치 부케야시키( )도 다시 가꾸어졌다.

보존은 단지 옛것을 되살리는 데 있지 않았다. 가나자와는 외부에서의 자본 유입에 목말라하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내발()적 발전 모델을 택했다. 외부의 자본에 기대기보다는 지역이 가진 제조, 유통, 서비스 등의 전통적 산업을 보존하고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경제적 효과를 지역 내에 남기기로 한 것이다.

가가유젠(일본 전통 의복을 만드는 염색옷감), 금박, 구다니()자기 등의 지역 전통산업이 시대에 맞게 다시 태어났다. 시는 전통 기술을 이어 갈 다음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시립 미술공예대학과 현립 기술고등학교를 세웠다. 우다쓰야마() 공예공방에서는 전통적 장인들을 기르고 있다. 가나자와에는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옮겨야 할 공장은 없다.

문화가 일상으로 흐른다

가나자와 시가 다음 단계로 추진한 것은 문화의 생활화였다. 시는 과시적인 문화시설을 만드는 대신 문화가 일상이 되도록 작은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시민들이 각종 예술 교육,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하는 지원정책을 펼쳤다. 1996년 문을 연 시민 예술촌은 스스로 문화적 활동의 주체가 되려는 시민들의 구심점이다.

가나자와는 이제 세 번째 단계인 문화의 세계화로 나아가려 한다. 1995년 발표된 가나자와 세계도시구상은 그 청사진이다.

시는 세계 도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나자와를 컨벤션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한 해 이 도시에서는 324건의 크고 작은 회의가 열려 8만 명의 외지인들이 찾아왔다. 가나자와 컨벤션 사무국의 책임자 니시다 데쓰지() 씨는 컨벤션 산업은 잘 가꾸어진 자원이 있는 가나자와를 알리는 데 기여한다고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시는 국제회의가 열리면 1인당 1만2000엔의 유치 지원비를 준다. 그래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계산 때문이다.

니시다 씨는 컨벤션 참가자들은 1인당 평균 5만7000엔을 소비하기 때문에 지난해에도 약 100억 엔 규모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나자와 시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통으로 남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시는 2004년 10월 시청 옆 공원에 깔끔하고 투명한 원형의 21세기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세지마 가즈요() 씨가 설계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개관 첫해에만 이 도시 인구의 3배가 넘는 157만 명이 가나자와를 방문했다. 미술관은 가나자와의 전통적 명소인 겐로쿠엔()이라는 아름다운 정원과 잇닿아 있다. 또 시민들이 쇼핑을 즐기고 이웃들을 만나는 가타마치()의 중요 상권과도 직접 연결된다.

발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장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뜻도 모를 세계화로 자신들을 내어 던지려는 천박한 시대에 완만한 속도로 도도하게 삶의 질을 키워 나가며 그것을 지역의 발전과 세계화로 연결시키고 있는 가나자와는 그 점을 진정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