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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선언’ 2년...비핵화 한발도 못나간 美 “北행보에 실망”

‘싱가포르 선언’ 2년...비핵화 한발도 못나간 美 “北행보에 실망”

Posted June. 11, 2020 07:36   

Updated June. 11, 202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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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 6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하루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싱가포르 선언’ 2년이 흘렀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은 아직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북한은 북-미 중재자를 자처했던 한국을 적(敵)으로 규정하며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은 가운데 미국을 향해 점차 날을 세우고 있다. 북한이 조만간 미국을 겨냥해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 속에 일각에선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도 2년 전보다 퇴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 시간)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강경 위협에 대해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며 “북한이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말 북한이 ‘성탄절 선물’을 거론하며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을 당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같은 고위 당국자들이 유사한 언급을 내놓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만약 약속을 어긴다면(도발한다면)” 같은 가정을 전제로 한 경고였다.

 미국이 ‘실망’이라는 이례적인 표현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2년 동안 북한 비핵화 문제가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싱가포르 선언은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설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및 전쟁실종자 유해 미국 송환 등이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로 비핵화 협상이 1년 3개월의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 등 나머지 3개 조항은 아무런 후속 조치 없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다.

 특히 미국 내에선 본격적인 ‘한국 때리기’에 나선 북한이 조만간 미국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대선이 5개월 남은 만큼 ‘핵전쟁 억제력 강화’를 공언한 김 위원장이 무력시위나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대선 판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변화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톱다운’ 방식 대신 실무협상을 강조하고 있고, 김 위원장을 ‘불량배’ ‘독재자’ 등으로 부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수시로 도발을 일삼았던 2017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닷새 만인 2017년 5월 14일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그해 내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6차 핵실험 등을 감행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북한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예전의 각본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이 각본에서 단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북한이 한미동맹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