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동아일보에서 일한 지 벌써 9년. 저는 하루를 동아일보와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집에 배달된 동아일보를 남편과 함께 나눠 읽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뭘(무슨 기사를) 쓰나’라는 혼잣말을 할 때가 자주 있거든요. 아무런 도움도 준 적이 없지만, 저도 덩달아 남편의 기사 걱정을 떠안으며 하루를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매일 벌어지는 일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머리를 짜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곁에서 느낄 수 있었지요. ‘가뜩이나 머리가 빠져 가는데, 저러다가 어쩌려고…’라는 외모 걱정도 했지만요.

그런 남편이 요즘 제 곁에 없습니다. “나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 났어”라고 무심하게 말하던 때가 작년 7월 말인데요. 그는 9월 저와 어린 아이 둘을 남겨 놓고 홀로 워싱턴으로 떠났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만 2년이 지난 시점이라서 남편을 따라 미국 생활을 같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기 힘들었을 때였거든요.

저와 남편은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초중고교 동기동창으로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데이트를 시작했고, 벌써 결혼 14년 차. 서로 철들기 시작한 후 서로의 삶에 너무 영향을 많이 미쳤거든요.

하지만 제가 감당하기 힘든 영역이 생겨났습니다. 동아일보 기자가 된 남편은 조금씩 달라졌어요. 아마 기자다워졌다는 뜻일 것 같네요.

학생시절 남편은 부드러운 남자였어요. 세련된 스타일에, 남에 대한 배려도 많고, (믿기 어렵겠지만) 여유롭게 양보도 많이 하고.

그런데 동아일보 기자가 된 뒤로는 성격이 급해졌어요. 말을 할 때 결론부터 말하지 않으면 늘 ‘그래서 한마디로 뭐냐’고 재차 묻고요, 논리적으로 닿지 않는 말을 들으면 꼭 지적해 고쳐 줍니다.

또 모처럼 휴가를 받아 놓고 (소싯적 안 읽던) 책을 읽겠다며 아내와 아이들을 멀리 하질 않나, 금방 일이 끝나니까 모처럼 집에 와서 저녁 밥 먹겠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나타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요. 이젠 그런 말 안 믿습니다. 혹 이 글을 보시는 동아일보 기자 지망생 여러분 그리고 남친·여친분들.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 두셔야 할 겁니다.

남편은 검찰청을 출입하던 시절에는 감춰진 진실을 찾겠다며 여자 화장실까지 ‘잠입’해 쓰레기통을 뒤지더라고요. 그리고는 조각조각난 메모지를 집에 들고 와 퍼즐 맞추기를 같이 하자고 잠자는 저를 깨웁니다. 공부할 만큼 하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글을 읽기도 전부터 집에 배달된 동아일보의 제호(題號)를 보고 “동아일보다”를 외쳤습니다. 잠들고서야 퇴근하는 아빠인지라, 어릴 적 아이들은 신문을 아빠와 동격으로 놓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나마 저는 바삐 돌아다니는 남편이 고마울 때도 있습니다. (너무 솔직한 건가요?) 저도 퇴근이 늦을 때가 많아서 아이들에겐 늘 미안했지만, 최소한 남편에겐 그런 느낌 덜 갖고 일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 부부는 부부싸움 할 일도 없었고, 권태기랄 것도 별로 못 느꼈네요.

동아일보 기자가 된다는 것은 - 다른 직업을 갖는 분들도 그러시겠지만 - 대단한 각오(commitment)가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루에 200만 부를 넘게 찍는 신문에 자기의 생각이 담긴 글을 쓴다는 것, 결코 가볍게 생각하거나 흐트러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적당히 중간만 하겠다는 생각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급 많이 주고, 근무환경 편하고, 주말 꼬박꼬박 쉬는 직장. 왜 요즘 이런 직장이 제일 인기잖아요. 제 눈에는 동아일보는 그런 곳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래서 제 남편이 하겠다고 나섰다면 전 절대적인 지지자가 될 생각입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다루는 정치부 기자이건, 영화평을 쓰는 문화부 기자이건, 억울한 사람의 응어리를 만져 주는 사회부 기자이건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꿈꾸시는 일을 잘 준비하셔서, 좋은 결실을 거두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