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우리 집에 배달되던 신문은 동아일보뿐이었다. 신문은 하나만 보아도 된다는 아버지가 선택한 신문이었다. 그 당시 독재정권 아래서 언론이 실상을 보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동아일보가 낫다고 말했다.

내가 동아일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4년이었다.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독재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가 시도되었다. 기업과 기득권층은 독재의 칼 앞에 몸을 사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시민들과 학생들은 용기가 있었다. 다들 동아일보가 굴복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세종로에 있던 사옥을 찾아가서 성금을 전달했다. 독재에 대한 우리 나름의 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지금도 나에게 남다르다. 대학동기인 임채청 국장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오면 기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90년대 중반에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고정관념이 깨졌다. 기자를 오래하면 어느 정도는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가족이 힘들더라도 원칙대로 살려는 그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가 서울 법대 시절 고시를 마다하고 언론사로 갔을 때 남다른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그가 편집국장이 되는 것을 보고 동아일보는 역시 사람을 제대로 쓴다고 깨닫게 된다.

TV도 별로 보지 않고 공부만 하던 나에게 동아일보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창문이었다. 그때의 나처럼 신문에 의존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도 많을 것이다. 사법부는 소송이 걸려야 판결을 하지만 언론은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헤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 판단을 만들어 나간다.

언론의 기본적 역할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왜곡된 것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임무도 중요하게 되었다. 독재가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언론은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세상이 올바른 것인지 뿐 아니라 어떤 세상이 나은 것인지, 무엇을 바꾸어야 나은 세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요즘 시민단체들이 정부를 비판하고 정책을 제시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시민단체가 올바르게 역할을 하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언론에서 해주었으면 한다.

언론의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기자라는 직업도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 기자 시험은 ‘언론 고시’라고 부를 만큼 사법시험보다도 통과하기가 더 어려운 관문이 되었다. 나도 지금 대학을 다닌다면 사법시험 대신에 기자 시험을 칠 것 같다.

기자는 쉬운 직업은 아닐 것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언론과 기자의 사회적 역할이 커진 것만큼 인재들이 언론사로 몰려야 나라가 제대로 될 것이다.

처세술로 “기자는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기자와 결혼을 해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살고 있다. 살아보니 언론과 기자에 대한 이해가 더 커지고 애정도 깊어진다. 둘 다 바쁘게 살지만 나는 아내에게 신문사 그만둘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격려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이 동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문사에도 아직 보수적인 면이 남아있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신문사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