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20분 전. 아직도 톱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발제를 보고 제목 초안은 잡아놓았지만 내용이 바뀌지나 않을지 불안하다. 기사여 제발 떠라…. 입안이 바싹 마른다.
10분 남기고 기사 도착. 1600자로 써 달라고 부탁했지만 1200자만 왔다. 모자라는 부분을 어떻게 하지? 준비해 놓은 그래픽을 쓸까? 아니면 사진을 좀 더 크게 쓸까? 소제목을 하나 더 달까? 취재부서에 전화해서 기사를 늘려 달라고 할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제목과 사진 위치를 조절하면 200자는 번다. 나머지 200자는… 그래 소제목 하나 더 달자. 이제 마감 8분전. 휴대전화가 울리지만 받을 시간이 없다. 식은땀 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제목 하나 더 달기가 쉽지는 않다. 기사 말미의 전문가 코멘트를 14자로 후다닥 정리했다. 시계는 마감 2분 전. 데스크에 제목지를 던졌다.
“좋아, 일단 가자고” 데스크의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퍼레이터에게 외친다. “자, 강판(降版·완성된 지면을 윤전기로 전송하는 것)합시다”.
이렇게 오늘의 전쟁은 끝났다.

편집기자는 매일 시간과 기사와의 전쟁을 치릅니다. 그렇다면 하루하루가 전시(戰時)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떤 요리를 준비할까요?
편집기자는 요리사입니다.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싱싱한 기사를 어떻게 꾸미고 배치하는가에 따라 원재료의 맛은 달콤하게 또는 매콤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입맛도 사로잡는 것을 아시죠? 편집기자는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아름다운 지면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입니다. 잡지사나 서구의 신문사는 미술을 전공한 ‘아트 디렉터’가 지면의 디자인을 담당하지만 국내 일간지는 편집기자가 그 책임을 맡습니다. 기사의 내용과 제목, 사진, 디자인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술기자와 상의해서 최종 ‘작품’을 구상합니다.
특히 ‘속보성’ 지면이 아닌 문화면이나 기획면을 담당하는 편집기자들은 국내외 걸작 디자인을 들춰 보며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아름다움뿐 아니라 의미까지도 효과적으로 담아 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속보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의 눈을 편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 편집기자는 ‘질서 있는 미(美)’를 항상 연구합니다.

시몬 너는 아느냐?
편집기자는 시인입니다. 한정된 단어를 사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시인처럼 편집기자도 12자 내외의 단어를 조합해 기사의 핵심을 드러내는 제목을 만듭니다.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아침에 기사 하나하나 꼼꼼히 보는 독자들은 드물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은 제목만을 보고 기사를 볼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제목은 기사에 대한 안내문인 동시에 기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길입니다.

취재기자는 아침부터 정보 수집을 위해 출입처를 돌아다니지만 편집기자는 정보수집과 동시에 오늘의 기사는 어떤 제목이 가장 적절할 지 고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육부에서 새로운 대입제도를 도입하는데 ‘대입제도 바뀐다’라고 매년 반복될 제목을 뽑을 수는 없습니다. 가장 파급효과가 크고, 새로운 내용을 앞에 내세우기 위해 편집기자는 대입제도의 변천사를 꿰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 때문에 편집기자의 책상에는 빨간 줄이 그어진 각종 신문과 관련 이슈에 관한 스크랩이 수북이 쌓여 있답니다.

오늘의 중심 투자종목은요?
편집기자는 애널리스트이기도 합니다. 증권시장에서 애널리스트는 정확한 판단으로 오늘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를 종목을 선택해 고객이 투자하도록 도와 줍니다. 편집기자도 가장 중요하고 화제가 될만한 뉴스를 선택해 지면에 돋보이도록 반영하게 됩니다.

남들이 그냥 지나친 뉴스도 편집기자의 판단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면 나중에 화제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얼리어댑터’라는 말이 있지요. 어떤 한 종류에 있어서 먼저 체험해 보고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정보를 나누어 주는 역할입니다. 편집기자는 뉴스의 얼리어댑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뉴스를 가장 먼저 보고 중요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편집기자는 최초의 독자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취재현장에서 한 발짝 떨어져 독자의 시선에서 신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정보 공급자’의 주장에 매몰되거나, ‘나무만 보다가 숲을 놓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요구되는 덕목이 너무 많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요리사도 시인도 애널리스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절반의 자격은 갖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끊임없는 지면연구와 ‘세상 돌아가는 흐름 좇기’ 노력이 더해지면 ‘신문의 프로듀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