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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집 앞 눈 쓸기

Posted January. 06, 20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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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을 겨우 치웠는데 또 폭설이다. 마침 건너 동네의 남미 청년 카를로스가 친구 2명과 함께 찾아왔다. 눈을 말끔히 치워주고 45달러를 받아간 이들은 이후에도 눈만 내리면 아침 바람에 달려오곤 했다. 폭설에 갇힌 서울을 보니 뉴욕 특파원 시절 눈 치우느라 고생하던 일이 기억난다. 이 집만 눈을 치우지 않았다는 신고라도 들어갈까, 행인이 쌓인 눈 때문에 넘어졌다며 소송이라도 낼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기록적 폭설이 내린 4일 신속한 제설작업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전화가 전국 시군구에 쇄도했다. 대뜸 욕부터 퍼붓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골목길 눈까지 치우려면 그만큼의 행정력이 필요하다. 수 십 년만의 폭설을 금세 치울 수 있는 제설장비를 지자체마다 사들이는 것은 세금 낭비다. 공무원을 투입하거나 서울 구청들이 운영하는 민간 용역을 동원하려면 세금이 필요하다. 서울시가 4일 자체적으로 뿌린 염화칼슘과 소금만 11억5000만원어치가 넘는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불편을 줄여야겠지만 그 비용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2006년을 전후해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일명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다. 주택 빌딩 학교 등 건축물의 소유자, 점유자 또는 관리자는 건물 주변의 보도 이면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의 눈을 치워야 한다.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의무다. 서울 성북구청이 펼친 캠페인처럼 주요 도로는 행정력으로, 보도와 뒷길은 주민과 함께 눈을 치우는 게 맞다.

제설 제빙 의무를 규정한 자연재해 대책법이나 내 집 앞 눈 쓸기 조례에는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이 없어 주민 참여가 전반적으로 저조하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자원봉사대는 이번 폭설 때 언덕길 눈을 말끔히 치웠다. 강원도 주요 도로의 눈 치우기에는 육군 1군사령부 장병들이 참여했다. 청주시 분평동 주민센터는 눈을 잘 치우는 업소에 모범 현판을 달아주며 참여를 유도한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언덕길처럼 열선()을 깔아 눈을 녹일 수도 있겠지만 100년만의 폭설엔 주민의 자발적인 눈 쓸기가 훨씬 효율적이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