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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왜 하나서 골프없인 못살아로

Posted March. 04, 20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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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가 못 말리는 골프 애호가로 변신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97년이다.

재야 운동권 출신인 이 총리는 3선 의원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골프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가 소속했던 당(새정치국민회의)도 골프는 사치 운동이라며 백안시하는 분위기였다. 골프장 건설로 인한 산림훼손, 골프장의 농약사용 피해 등은 국민회의 소속 의원들이 단골로 문제 삼는 소재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최측근이자, 동교동계 특무상사로 불리던 이훈평() 전 의원의 권유를 받고 45세 늦깎이로 골프에 입문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총리는 당시 고교(용산고) 동문 등으로부터 골프를 시작하라는 권유를 받고 있던 터. 한 친구는 골프채를 사 주기도 했다. 그러자 이 전 의원은 이 총리를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회원제 골프연습장인 강변구락부에 데리고 가 등록시켰다.

DJ도 대선을 앞두고 나는 골프는 안하지만 퍼블릭 골프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는 등 골프에 대해 유화론을 꺼냈다. 골프를 즐기는, 이른바 기득권 보수층을 껴안기 위한 대선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 총리 측은 DJ가 직접 골프를 배우라고 했다고 전했다.

두 달여 맹훈련을 거친 뒤 이 총리는 1997년 뉴서울CC에서 첫 라운딩을 하게 된다. 이훈평 전 의원이 동반했고 당시 한겨레21 기자로 이 총리와 함께 골프를 배운 김성호() 전 의원이 동반자였다.

이 총리는 DJ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한동안 뜸했다가 당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필드를 찾았다. 이 총리는 당시 장관 때는 골프를 못했는데 당으로 오니까 골프를 맘대로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전 최고위원과 안동선()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자주 어울리며 골프장을 다녔다. 많게는 한 주에 3, 4번 라운딩을 즐겼고 이때 실력도 부쩍 늘었다. 베스트 스코어는 80타. 홀인원 경험도 있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80대 중반의 스코어를 쳤지만 최근엔 90타 전후를 친다고 한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00야드 안팎으로 장타는 아니나 쇼트게임과 퍼팅을 잘한다. 깐깐하게 룰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소액의 돈을 걸고 치는 내기골프를 좋아했으나 장관 등과의 공식 라운딩 때는 내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용관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