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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Posted July. 13, 2021 09:18,   

Updated July. 13, 20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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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7년 독일은 나폴레옹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다. 나폴레옹은 후퇴하는 독일군보다 빨리 전진해서 단숨에 베를린을 점령했다. 독일인들에게는 더욱 모욕적이게 자신이 프리드리히 대제의 군사적 계승자임을 과시한다.

 같은 해 12월부터 14주 동안 일요일 저녁마다 프랑스군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 학술원 강당에서 40대 후반 철학자가 열정적인 강연을 했다. 그는 독일 패전의 원인을 분석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마녀사냥식 위안을 늘어놓지 않았다. 반드시 극복해 낼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당당하게 선포한다. ‘독일인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민족이다.’

 이 철학자가 피히테이며, 강연을 모은 글이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다. 독일은 이때까지도 프로이센, 작센, 바이에른 등 여러 공국의 연합체였다. 충격적인 패전은 희생양을 찾고 더 깊은 분열로 빠뜨릴 수 있었다. 피히테는 이런 위험을 직감하고 모든 악은 외국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선언한다. ‘독일인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이 장점이 외국의 언어와 문화에 오염되었다. 그 악을 제거하고 고유한 독일 국민의 본성을 되찾고, 국가적 단합을 이루면 독일은 위대한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가 필요하고 그런 인재를 만들어 내는 교육이 독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호소한 덕분이다. 다만 과도한 국가주의와 섞은 탓에 독일에 양날의 검이 되고 말았다.

 피히테의 글에는 진실과 선동, 통찰과 궤변이 섞여 있다. 후대의 지성은 시대의 사정을 이해할 의무도 있다. 동시에 목적과 수단의 괴리를 걸러내야 할 책임도 있다. 우리 사회는 후자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까. 아니면 ‘시대’라는 커튼 뒤에 숨어 자기 합리화에 몰두하고 있을까. 보약 한 그릇에 독 한 방울을 타면 그 약은 독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