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힌 뒤 북한 내부에서 ‘핵 프라이드’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핵으로 위협한 덕분에 ‘월드 파워’(세계적인 강대국)가 됐다는 삐뚤어진 자신감 말입니다.”
진 리 전 AP통신 평양 지국장(사진)은 1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과 만날 정도의 위치까지 오른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최강대국 미국이라도 자주적인 핵능력을 확보한 북한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워싱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한국센터장으로 있는 리 전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장국으로서 북한의 지위를 확인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그런 식으로 주민들에게 이번 회담의 의미를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전술의 핵심 문구는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We are untouchable)’”라며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아무도 우리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핵 포기가 아닌 핵 보존이 북한의 정상회담 전략이며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리 전 국장은 김정은이 제안한 북한 핵시설 폐쇄와 검증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보여줄 핵시설은 북한이 보유한 전체 핵시설의 10%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 검증단에 노후화한 플루토늄 생산 공장만 ‘투어’시켜 주고 자신들의 핵심투자 시설인 우라늄 농축은 고이 숨겨둘 것으로 내다봤다.
리 전 국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란 이벤트가 김정은 권력 공고화에 ‘보난자(bananza·노다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평양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북한 지도부의 부패상과 일반 주민의 빈곤을 수없이 목격했다. 리 전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못사는 것을 전쟁 때문으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평화협정의 의미가 그다지 와 닿지 않지만 북한은 완전 다르다. 전쟁을 끝내준 김정은 동지에 대한 주민들의 경외심과 충성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 정상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핵우산 제거를 염두에 두고 있고,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 버르장머리를 고칠 생각만 하고 있으니 서로 주파수가 맞을 리 없다는 것이다.
리 전 국장은 “멀리 뒤돌아 볼 것도 없이 7년 전만 생각해보라”며 “2011년 윤달 합의(Leap Year Deal)에서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얼마 안 지나서 위성 발사라고 우기며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평양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북한은 북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북한 지도자의 최고 목적은 권력 유지이며 이 목적에 따라 북한은 움직인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정미경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