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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유목민’ 왕정훈, 유럽의 왕자로

Posted November. 25, 2016 07:17,   

Updated November. 25, 201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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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를 잡은 거잖아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아요.”

 2016시즌 유러피안골프투어 신인왕에 오른 왕정훈(21·한국체대)의 목소리는 밝았다. 지난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끝난 시즌 마지막 대회를 마친 뒤 귀국한 그는 24일 “오늘 아침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에이전시로부터 신인왕 결정 사실을 통보받은 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올해는 운이 정말 좋다”며 웃었다. 이날 발표된 유러피안투어와 R&A, 골프기자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왕정훈은 지난해 안병훈에 이어 한국인 신인왕 수상자가 됐다. 시상식은 내년 5월 영국 BMW PGA챔피언십 때 열린다.

 연초만 해도 왕정훈이란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5월 대기 선수로 있다 출전한 모로코 트로페 하산 2세에서 우승한 뒤 모리셔스오픈까지 2주 연속 정상에 오르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최근 유러피안투어 플레이오프 네드뱅크 챌린지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신인 중 최고인 상금 랭킹 16위로 시즌을 마쳤다. 29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력을 지닌 왕정훈은 “올 시즌 퍼팅이 잘됐다. 집게 그립으로 바꾼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올해에만 16개국을 돌아다니며 대회에 출전한 왕정훈은 어려서부터 ‘필드의 유목민’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고1 때 국내로 돌아왔지만 학력 인정을 제대로 못 받아 찬밥 신세였다.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간 그는 만 16세 때인 2012년 프로로 전향했다. 연령 제한이 없는 중국투어와 아시안투어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단한 떠돌이 생활 속에서도 스타의 꿈을 키웠고,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그토록 원했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왕정훈은 “체력 관리를 하려고 대회 때도 늘 헬스클럽을 다녔다. 원래 입이 짧은데 컨디션 유지를 위해 낯선 외국 음식을 억지로라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8월 올림픽 이후 뇌수막염에 걸려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며 10kg 가까이 체중이 빠졌지만 강한 의지로 재기했다. “애덤 스콧 등 대선수들과 같이 치면서 많이 배웠어요. 샷이 잘 안될 때도 풀어가는 능력이 부러웠어요. 경험과 노련미를 더 길러야죠. 아직 메인 스폰서가 없는데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도록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요.”

 다음 달 8일 홍콩오픈을 통해 새 시즌을 시작하는 왕정훈은 “요즘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늘어 쑥스럽다. 자만하지 않고 내년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하고,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