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중진협의체 이름값 해야

한나라당이 어제 세종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3선 또는 4선 의원 6명으로 중진협의체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친이(친 이명박)계, 친박(친 박근혜)계, 중립성향 각 2명씩으로 균형을 갖춘 중진협의체가 한 치 양보도 없이 맞서던 수정안과 원안의 간극을 매울 수 있을지 안팎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양쪽 계파가 명분 쌓기나 정치공학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중진협의체는 어떤 결실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에 대한 중진협의체는 공허한 쇼만 벌이다 시간을 허비한 셈이 된다.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정치적 허무주의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여야간 정파간 대치 속에서 중진간 물밑 접촉을 통해 극적 타협안을 도출해낸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강경파의 목소리만 요란하고 중진들의 위상과 역할이 허약해졌다. 경륜과 포용력으로 링커 역할을 하는 선수() 많은 의원들이 무대 전면에서 사라지고 계파 보스의 대변인과 비서같은 의원들만 부산하다. 우리 정치가 대화와 타협을 내던지고 극단의 대립으로 치닫는 데는 허리가 부실한 원인도 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 미국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 지도부가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돌파하기 위해 상원의 토론 종결 정족수를 5분의 3에서 과반수로 낮추려 하자 민주당이 강력 반발했다. 양당이 극한 대립하자 존 매케인, 올림피아 스노 등 공화당 의원 7명은 당론과 달리 정족수 변경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고, 벤 넬슨, 조 리버먼 등 민주당 의원 7명은 비상상황이 아니면 필리버스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부분 중진인 이들 14인은 위기에 처한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지켜낸 정치인들로 평가되고 있다. 한나라당 중진협의체도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세종시 문제가 6개월이 넘도록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중진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원안과 수정안을 사수하는 계파의 대리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진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 국가의 미래, 국민의 이익을 해법을 찾아내 자기 쪽 사람들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보여줘야만 진정한 중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선출회의에 참석한 추기경들처럼 세종시 해법을 찾아내기 전에는 국민 앞에 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혜를 모은다면 타협안을 못 만들어낼 것도 없다. 한나라당 중진협의체가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