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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물 7만종 주권 지키기 비상

Posted February. 24, 201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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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북한군의 총격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하는 지리산 멸종위기종 복원센터의 근심이 깊어졌다. 남북 관계와 반달가슴곰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한국이 지리산에 방사하는 반달가슴곰 원종()을 확보해 온 경로는 러시아, 중국 등이다. 연해주와 지린() 성 곰이 한반도 토종 곰과 유전자가 같기 때문. 그러나 몇 년 사이 이들 창구가 모두 굳게 닫혔다. 러시아와 중국이 생물종 유출을 금지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북한과의 협상이 깨지자 복원사업의 활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각국이 자국 생물자원을 활용해 얻는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생물자원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생물자원이 인류 공동자산이었다. 먼저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임자였다. 하지만 1993년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되면서 생물자원은 국가 자산이 됐다. 특히 올해엔 생물자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협약이 맺어질 예정이다.

위태로운 한국의 생물 주권

한국도 과거엔 생물자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손해를 봤다. 국내 식물전문가들은 미국 보스턴 아널드 식물원을 방문할 때마다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를 바라보는 심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에서 채집돼 이곳으로 건너와 상품화된 토종식물 때문이다. 1917년경 한국에서 채집된 노각나무는 해외에서 고급 정원수로 상품화됐다. 1904년경 미국과 유럽에 반출된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 받는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미스킴라일락은 1947년 미국 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취한 한국 토종 털개회나무(수수꽃다리)를 개량해 만든 것이다.

지금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국에 존재하는 생물종은 약 10만 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문헌조사에 의해 밝혀진 종은 3만 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7만 종은 해외로 반출돼 상품화되더라도 우리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생물 특허전쟁 대비 전통지식 축적

전주대 김현 교수팀은 지난해 8월부터 전북 김제, 장수, 부안을 샅샅이 훑으며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식물 활용 비법을 취재했다. 소가 힘이 없거나 밥을 잘 안 먹을 때 하늘타리라는 풀을 뜯어다 뿌리를 찧어서 먹이면 효과가 그만이야. 된장이나 고추장을 담근 뒤 강낭콩을 넣으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아. 천연 방충제지. 그래서 강낭콩을 고자리(구더기의 방언)콩이라고 불러. 김 교수팀은 민간의 전통지식을 기록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자생식물 52종 등을 85가지 용도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연구는 문헌 기록을 남겨 놓아야 우리 식물을 가지고 제품을 만든 외국 기업과의 특허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생물자원의 재산 대장을 만드는 셈이다. 실제로 인도는 미국이 자국() 식물인 심황이나 님(Neem)나무의 추출성분을 가지고 만든 상처치료제와 살충제 등에 대한 특허를 취소시킨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인도인들이 이들 식물을 같은 용도로 사용해 왔다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특허소송에서 이긴 것이다.

10월 생물자원 권리 다툼 벌어진다

생물자원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은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소유국과 이용국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룰인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ABS) 국제협약이 제10차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협약이 의결돼 구속력을 갖게 되면 생물산업 구도는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A국가에서 생물자원을 가져다 B국가가 상품화한 경우를 보자. 지금까지는 이익 분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품화 단계부터 어떤 자원을 활용했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A국가가 이익을 챙기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그만큼 생물자원의 몸값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10월 열리는 회의에서는 소유권을 인정받는 자원의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지, 이익 배분 대상과 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소유권의 발효 시점은 언제로 할 것인지 등이 다뤄진다. 3000억 달러(약 345조 원)에 달하는 국제 생물산업 시장을 들썩이게 할 중요한 주제들이다.



김용석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