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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0년만의 첫 준예산 부끄러운 역사 만들 건가

[사설] 50년만의 첫 준예산 부끄러운 역사 만들 건가

Posted December. 25, 20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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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준예산 집행 등 관련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준예산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회계연도가 시작될 경우 전년 예산에 준해 재정을 지출하도록 한 헌법 54조3항에 따른 비상예산이다. 여야가 연말까지 끝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정부는 새해 첫날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준예산 집행지침을 의결할 계획이다. 1960년 3차 개헌 때 도입된 준예산 제도는 국가비상사태로 인해 국가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에 대비한 비상조치로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왜 연초부터 나라살림 정지()의 대혼란을 겪어야 하는가. 이러라고 국회의원 시켜준 것은 결단코 아니다.

준예산이 집행될 수 있는 경우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 운영 등 세 가지로 한정돼 있다. 어제 이 대통령은 준예산 상황에서는 모든 공무원에 대한 급여지급을 유보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을 계속하는 경우 준예산이 집행되지만 정부가 24조8000억 원으로 편성한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사업 중 계속 사업은 20%뿐이어서 나머지 80%는 집행이 어려워진다.

준예산 하에서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만 집행되므로 서민과 중산층이 타격을 받는다. 기획재정부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중증장애인연금, 희망키움통장제가 시행되지 못하고 맞벌이가구 보육료 지원확대, 장애아동 재활치료 지원확대 등이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희망근로나 청년일자리, 보금자리주택사업 같은 정책사업도 중단된다.

최근까지 한국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극복하는데는 재정지출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루아침에 재정이 집행되지 못할 처지가 된다면 경제에 주는 충격이 클뿐더러 국가 신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당이 국회에서 농성을 벌여가며 반대하는 4대강 사업비는 내년 전체 예산 291조원의 1.2%에 불과하다. 4대강 예산을 조정한다고 해도 예결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뜻을 모아서 해야지 여야간 담판으로 할 일은 아니다. 민주당은 예산안 심의를 위한 예결위 활동에는 응하지 않은 채 영수회담만 요구하고 있다. 예산안 심의는 국회의 권한이자 의무다. 여야가 정치적 쟁점 예산에만 칼날을 세우고 나머지 예산은 얼렁뚱땅 심의하는 것은 민생 경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벼랑 끝 예산안 통과의 악습은 언제 사라질 것인가. 국민은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