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실습 아쉬운 개원의동남아 원정

Posted May. 21, 2009 07:17,   

ENGLISH

태국 치앙마이의 한 대학병원 실습실. 10여 명의 한국인 의사가 2명씩 짝을 지어 실습대 앞에 섰다. 실습대 위에는 미리 준비된 커대버(해부용 시체)가 누워있다. 강의를 담당하는 현지 교수의 지시대로 의사들은 메스로 커대버의 가슴을 절개하기 시작한다.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시신의 피부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리얼하다.

최근 국내 미용외과 개원의사들 사이에서 해외 커대버 실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국내의 한 의학세미나 제공업체는 미용외과 개원의사들을 대상으로 3박 4일 일정의 태국 해부실습 여행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 업체 홈페이지에는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신선한 커대버를 제공한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이 여행에 참가하는 의사들은 2명당 1구의 프레시커대버(포르말린 등 방부처리를 하지 않고 냉동 기술로 보존한 시신)로 가슴 성형, 주름제거, 코 성형 등을 실습하게 된다. 의료기술을 익히기 위해 신선한 시체를 제공하는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의과대학생들은 주로 방부처리한 커대버를 쓴다. 학생들은 48명당 1구의 커대버를 받아 교육과정에 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해부한다. 그러나 당장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은 피부, 혈관 등이 실제와 유사한 프레시커대버를 선호한다. 해동한 프레시커대버는 즉시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길어야 3일 이상 사용할 수 없다.

태국 해부 여행은 떠나는 날과 돌아오는 날을 제외한 이틀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에서 해부실습과 세미나를 진행하는 강도 높은 일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업체 관계자는 해부실습과 세미나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관광도 한다며 추가 요금을 내면 새벽에 골프를 즐길 수 있고 저녁에는 쇼도 관람할 수 있다고 말했다. 3박 4일 일정에 290만 원 내외의 참가비가 만만치 않아 요즘처럼 경기가 나쁜 때는 참가자가 약간 줄고 있다. 이곳을 포함해 국내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은 두 곳이 있다.

좌훈정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의학적 관점에서 의학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해부실습은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커대버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워 일반 개원의사들은 의대를 졸업한 이후에 해부실습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 미용외과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동남아 국가보다 프레시커대버가 적고 가격도 비싼 편이라며 개원 후에는 아는 선후배끼리 의료기술을 서로 배우는 정도이고 커대버 실습을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시체를 해부할 수 있는 경우는 의치한의과대학의 해부학, 병리학, 법의학을 전공한 교수, 부교수, 전임강사가 직접 하거나 교수 감독하에 의학 전공 학생이 해부할 때뿐이다. 이혜연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국내에 프레시커대버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사용할 때는 엄격하게 통제한다며 해부학 전문가가 참가하지 않으면 해부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의대 수업이나 공식적인 학회 세미나 등에서 커대버 해부를 하고 있다.

특히 미용외과 개원의사들의 해외 커대버 실습이 활발한 것은 국내에서 미용외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승호 가톨릭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최근에는 시신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커대버 실습과 수업에 지장이 없다면서 그러나 의학교육을 위해 기증한 시신을 상업적인 의료를 위해 쓰는 것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도 인식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남윤서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