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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술과 본고사 사이

Posted January. 13, 200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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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은 중학교 3년생들에게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내신 특기 수학능력시험 중 하나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듬해 이들이 고교에 진학하자 정부 지시에 따라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됐고 교내 모의고사가 축소됐다.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이 말을 믿고 공부에 소홀했던 학생들은 입시에서 큰 낭패를 봤다.

이들이 치렀던 2002학년도 수능은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 시험의 변별력이 커지면 공부에 소홀했던 학생들이 점수에서 더 손해를 본다. 교육당국은 내신이 중요할 거라고 했지만 대학들은 부풀려진 내신을 믿지 않았다. 특기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부의 약속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학력이 크게 저하된 이해찬 세대로 불리는 이 시기의 학생들은 입시를 치르면서 불신과 분노를 먼저 배웠을 것이다.

교육의 교()자는 스승은 손에 매를 들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며 어린이는 공손하게 본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으로 거짓을 가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정권에서 논술고사가 그런 사례였다. 정부가 획일적 입시를 강요하자 대학들은 우수 학생을 뽑기 위한 수단으로 논술고사의 비중을 높였다. 내신은 믿을 수 없고, 수능은 만점자가 수두룩한 물 시험이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부와 대학들이 논술을 입시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실은 본고사 대용품이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술고사가 치러질 때마다 본고사와 다름없다는 논란이 빚어진 것은 필연이었다. 대학은 최대한 본고사에 가까운 논술을 치르려 하고, 정부는 논술의 경계선을 못 넘게 압력을 가하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생긴 것이 기상천외한 논술 가이드라인이었다. 2011학년도 입시의 기본 방향을 15일 발표할 예정인 대학교육협의회가 논술고사에 영어지문 출제와 수학의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허용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또 한 번 논쟁이 불거질 듯하다. 이럴 바에야 아예 대학별 본고사를 허용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실효성 면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