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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노선 갈등 곪아터지나

Posted February. 04, 2006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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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과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3급비밀 회의록과 내부자료를 폭로한 최 의원을 둘러싼 전선()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단 최 의원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게 직접 칼끝을 겨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의원은 연 이틀 공개한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서를 근거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혼란을 지적하며 이 내정자의 거취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며 사실상 사퇴 압력을 넣고 있다. 최 의원이 이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연달아 폭로를 터뜨린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최 의원은 왜 이 내정자를 겨냥했을까? 여기에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내연()해 온 강성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의 오랜 갈등이 숨어 있다는 게 여권 내의 분석이다.

최 의원을 필두로 한 강성 자주파는 현 정부가 집권 초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끌려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 감축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거의 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대미 정책이 변질된 핵심에 온건 자주파인 이 내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이 내정자가 노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해 외교안보 정책을 농단해 왔다는 것이 강성 자주파의 주장이다.

강성 자주파에는 청와대 내 386 일부와 국정상황실과 민정수석실의 일부 관계자, 이 내정자의 NSC 운영에 불만을 품은 NSC 내부 세력이 포함돼 있다는 게 여권 내의 분석이다. 이번에 최 의원에게 청와대 내부문서를 유출한 쪽이 이들 청와대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은 지난해 4월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청문 형식의 조사를 벌였으며, 민정수석실도 별도의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실용주의와 국익를 강조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겠다는 이 내정자는 온건 자주파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성 자주파에게 사이비라고 비판받아 온 이 내정자는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에게서는 대미동맹을 무시하고 자주만 앞세운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이 내정자를 잘 아는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실리와 자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이 내정자는 이쪽에서는 저쪽 편 아니냐, 저쪽에서는 이쪽 편 아니냐는 불만을 사기 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외교안보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서 이 내정자의 파워는 막강하다. 노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3일 대통령은 이 문제(전략적 유연성)가 제기된 초기부터 관여하여 방향을 설정했고, 최종 합의된 문안도 대통령이 직접 검토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에게 전략성 유연성 관련 보고가 누락됐다는 최 의원의 주장을 사실상 묵살한 셈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 같은 청와대 입장 발표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최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강성 자주파의 이종석 죽이기 시도를 노 대통령이 직접 막아선 것이라고 볼 측면이 많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이번 일이 이념 다툼보다 최 의원의 돈키호테적인 성격이 빚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이 내정자의 이날 오전 상견례 직후 통외통위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최 의원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 것 같더라. 참석 의원들은 이 내정자의 설명에 대부분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면에는 노 대통령의 신임을 둘러싼 여권 내의 경쟁 심리가 개입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내정자가 노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해 온 것이 노 대통령과 오랜 기간 고락을 같이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겠는가. 어쩌면 노선은 그 다음 문제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제균 하태원 phark@donga.com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