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우리도 평범한 고3 대입엔 장애없죠

Posted November. 23, 2005 08:11,   

ENGLISH

오늘은 춥지만 내일은 날씨가 풀린대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경운동 경운학교 교정. 삼육재활학교 대학 진학지도 담당 김연순(37여) 교사는 2006학년도 수능 예비소집에 참석한 삼육재활학교 뇌성마비 장애학생 8명과 부모들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시험장을 둘러보던 학생과 부모의 얼굴이 나들이 온 것처럼 밝은 모습에서 점차 굳어 가고 있었기 때문.

김 교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학생들을 한 명씩 데리고 시험장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시험을 치를 교실이야. 마음에 들어? 우리 학교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평상시처럼 행동하면 돼. 내일 감기 걸리지 않도록 따뜻하게 입고 와.

시험 잘 치러라 내일 잘해야 돼 등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들에겐 내일 시험장에 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에 사는 다른 뇌성마비 학생 16명과 함께 이곳에서 시험을 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끼리 한 학교에 모여 시험을 치도록 하고 있다.

삼육재활학교에서는 올해 모두 9명이 수능에 응시한다. 이 학교에 대학진학반이 생긴 것은 3년 전. 각 대학이 장애 학생을 뽑는 특별전형을 확대하면서부터다. 김 교사는 이들에게 삶의 목표와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진학교사를 자원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호응과 투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첫해인 2002년 15명이 응시해 10명이 대학 진학에 성공했는가 하면 이듬해엔 15명 가운데 9명, 그리고 지난해엔 14명 전원이 대학생이 됐다.

이들은 일반 고교생과 마찬가지로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정규수업에 이어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계속했다. 집에서는 부모와 함께 교육방송 등을 보며 오전 2, 3시까지 공부했다.

올해 수험생인 조현기(21) 씨는 이 학교 응시자 가운데 맏형. 장애로 초등학교에 늦게 입학했지만 학업성취도나 학교생활은 형답게 모범적이다. 그의 꿈은 수학자나 물리학자. 하지만 그가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 교사는 혼자서 책을 한 장도 넘기기 힘든 그를 받아줄 이공계 대학이 없어 인문계 대학에 지원하도록 유도할 생각이다.

김 교사는 장애 때문에 너는 다른 과를 가야 한다고 말할 때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고 희망을 갖게 했던 내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직 우리나라 대학은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 과정과 생활공간을 극복할 수 있는 장애인들만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라며 대학이 장애 학생들을 배려하는 의식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올해는 입시 한파가 없다고 하니 아이들이 꽁꽁 언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게 돼 다행이라며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벽도 녹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영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