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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비컨 입성한 양정웅

Posted September. 14, 200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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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연극은 1911년 극단 혁신단이 서울 남대문 밖 어성좌()에서 공연한 불효천벌이었다. 어느덧 100년 역사를 바라보는 연극계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극단 여행자가 셰익스피어 작품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년 6월 공연을 갖는 런던의 바비컨 센터는 각국 연극인들이 꼭 한번 서기를 갈망하는 곳이다. 바비컨 측은 여행자의 연극을 직접 보고 초청을 결정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에 우리 연극의 역()수출이 이뤄진 셈이다.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을 남겼다. 애틋한 사랑을 테마로 한 한여름 밤의 꿈은 그중에서 가장 널리 공연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인류 최고의 문인이라는 찬사가 어울린다. 냉전시대에 공산 국가들도 서방 작가 가운데 셰익스피어만큼은 받아들였다. 셰익스피어를 배출한 나라답게 영국은 연극 수준이 매우 높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로열 셰익스피어극단에 바비컨 센터를 무료로 영구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게 영국인이다.

영국이 우리 연극에 흥미를 갖게 만든 주역은 30대 연출가 양정웅 씨다. 세계를 향한 그의 집념은 예사롭지 않다. 한여름 밤의 꿈의 양정웅식() 버전은 이 작품의 무대를 아테네의 테세우스 궁전에서 한국의 옛 시골 마을로 옮겨 놓은 것으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은 한국 전설에 나오는 도깨비와 한복을 입은 토종 젊은이들이다. 원작의 골격을 지키면서도 한국의 전래 동화를 보는 듯하게 만든 절묘한 변환이다.

아마도 원작 그대로 서양식 연극을 만들어 보여 줬다면 영국인의 눈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미학을 표현해야 세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연출가의 혜안()이 성공 비결이다. 그는 작품 구상 때부터 세계 진출을 노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어록에는 마음의 준비만 되면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란 말이 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 작업에도 적용될 만한 명언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