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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먹을 권리

Posted May. 27, 2005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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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고 한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정말 배고픈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못 된다.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해 온 우리나라에서 열 명 중 1명꼴인 500만 명이 빈곤층이라는 통계청 추산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빈곤층 평균치(10.2%)엔 속하는 셈이다. 미국은 빈곤층이 17.1%다. 스웨덴(5.3%)은 물론 영국(11.4%)이나 일본(15.3%)보다 비중이 높다.

세계화와 시장경제가 빈부차를 확대시키고 갈수록 살기 어렵게 만든다며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수치를 보면 틀린 얘기다. 인류는 과거에 비해 훨씬 잘 살고 있다. 18세기 말에서 200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 36배 늘었고 서유럽 13배, 아시아 8배, 아프리카는 4배 늘었다. 빈곤층도 훨씬 줄어들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빈곤층은 1981년 세계인구의 33%(15억 명)에서 2001년엔 18%(11억 명)가 됐다. 과거나 지금이나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곳은 세계화와 시장경제가 발달한 데가 아니라 그 정반대인 아프리카다.

경제개방 초기엔 불평등이 커지지만 경제성장과 함께 부()가 확산되는 패턴을 쿠즈네츠 커브라고 한다. 지난 세기말까지의 우리나라도 이런 패턴이었다. 관건은 경제성장이 지속되는지에 달려 있다. 1965년만 해도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비슷했다. 매년 6% 이상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는 OECD에 진입한 반면 2%에서 오락가락한 필리핀은 완전히 처지고 말았다.

500만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전과는 달리 아랫목 군불이 윗목까진 오지 않는 이상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설움 중에서도 배곯는 설움이 제일이라고 했다. 더구나 먹을 권리 하나 보호받지 못하는 북한주민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아직 경제성장이 더 필요하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