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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철학교육

Posted May. 09, 200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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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것은 떳떳하게 밝혀서 사고를 막아야 해요.(우식)

회사 쪽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넌 잘못한 걸 숨겨본 적 없니?(지희)

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교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 5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화재 위험 세탁기 비공개 리콜?이란 신문기사를 소재로 잘못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에 대한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100분 수업 동안 아이들은 다양한 생각을 쏟아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한 올바른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까지 내다보며 진실의 의무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사고()하는 연습을 했다.

어린이철학연구소 임병갑 개발실장은 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 사고를 통해 상식을 재발견하고 창의적인 답변을 찾는 교육과정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깊이 있게 사고하는 습관을 키워주면 문제해결능력이 생겨 현명하게 판단하고 리더십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학전문학원 수도권에만 20여 곳

1990년도 중반부터 학부모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철학교육이 최근 창의력을 강조하는 입시제도 영향으로 다시 바람이 일고 있다.

학교에서 독서에 대한 심층 지도를 시작하고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철학교육 붐에 한몫하고 있다.

어린이철학교육연구회 지혜사랑 한기호 대표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발표 이후 철학 수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며 지난해 2학기보다 학생 수가 3040% 증가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두세 군데에 불과했던 철학전문학원은 최근 수도권에만 20여 곳으로 늘었다. 한우리 등 대형 독서지도 업체들도 철학 교육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박민규 소장은 입시 때문에 철학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며 어린이 철학교육은 사회가 요구하는 논리적 비판적 사고를 갖춘 인재를 키우기에 적합한 교육방법이라고 말했다.

칸트나 소크라테스를 가르친다고요?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논리적 대화와 토론능력, 글쓰기, 사고력, 리더십을 길러주고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초등 3학년 자녀에게 철학교육을 시키고 있는 김남선(37여서울 서초구 서초동) 씨는 전에는 뭘 물어보면 그냥요 몰라요라고 대답하는 일이 많았다며 이제는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려고 하고 왜요? 어떻게요 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철학수업은 대부분 또래 48명이 모둠을 구성해 90120분 간의 토론으로 이뤄진다. 지도강사는 대화의 물꼬만 터줄 뿐 아이들 스스로 의견을 나누고 답을 찾아가도록 한다. 철학적 사유의 근본적 방법인 대화법에 따른 것이다.

한기호 대표는 초등학생까지 논술교육을 받는 현상은 대입제도의 영향 때문이고 철학이나 논술교육 모두 목표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논술교육은 문제에 대한 고찰보다는 답안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철학교육은 문제를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건국대 성태용(철학) 교수는 어린이 철학교육을 칸트나 소크라테스를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며 철학교육을 통해 일상의 궁금증에 대해 이치를 파고들면서 비판적이고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키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선 강사의 질 우려하기도

철학교육기관 홈페이지에 마련된 학부모가 본 철학교실을 살펴보면 자기 생각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된 아이에 대한 뿌듯한 감정을 드러내는 학부모의 글이 많다.

프랑스 등 선진국은 공교육에서 철학교육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게 대부분이다. 주1회 교육에 한 달 수강료는 8만 원 안팎이다.

중고교에서는 국어 윤리 교사나 전문 철학 교사가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철학 과목에 대한 교사 연수 프로그램조차 없어 100%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 철학교육 붐이 일면서 교육기관도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고 자연스레 지도 강사의 질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학교육 학원에 다니지 않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토론의 기본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KP어린이철학교육원 이진희 원장은 어린이 철학교육은 아이들의 사고가 단절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평소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살펴 궁금증을 한 단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길진균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