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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야만과 욕망의 전쟁터

Posted March. 18, 200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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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는 왜 스포츠만으로 보이지 않을까.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으로 양국 관계가 들끓는 요즘, 두 나라의 응원단이 안심하고 한 경기장에 모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축구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민족 인종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다뤘다. 한일 관계는 다루지 않았지만 저자는 축구를 통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인종 분쟁, 스코틀랜드의 가톨릭과 신교의 갈등, 스페인 카탈루냐 민족주의, 이탈리아의 스포츠와 정치의 유착 등을 들춰낸다.

저자에게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간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욕망과 야만의 전쟁터다. 이글거리는 눈과 사나운 태클, 땀과 피가 튀는 몸싸움이 축구의 매력이지만, 이런 모습 자체가 인간의 소름끼치는 본질일 수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세르비아에 있는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 구단의 훌리건(광적인 축구 팬)은 마음에 안 드는 선수들을 각목으로 두들겨 팰 정도로 난폭하다. 울트라 배드 보이스로 불리는 이들은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불을 지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전 유고 대통령)의 돌격부대가 돼 인종 청소의 대리자로도 활동했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팀의 경기가 있는 날, 양 팀의 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살육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응원가를 지어 부른다.

영국 글래스고를 본거지로 하는 가톨릭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 구단의 팬들은 경기장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의 노래를 외친다. 양측의 갈등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 갈등에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인들 사이의 오랜 증오가 중첩돼 있다. 응원가의 가사는 의 피가 우리의 무릎을 적시네라고 할 만큼 섬뜩하고, 이 도시에선 축구 때문에 살해된 이들도 여러 명 있다.

이탈리아는 축구장 자체가 싸움판이다. 이곳에선 축구 심판이 유명세를 탄다. 심판이 우대받는 까닭은 선수들이 경기 도중 난폭하게 항의하거나 책략을 꾸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축구를 이끄는 AC 밀란과 유벤투스 팀은 과두 재벌이 소유하고 있다. AC 밀란의 구단주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로, 그는 부동산 언론 금융계를 장악한 뒤 축구를 이용해 서민층에 다가갔다. 그는 1980년대 중반 AC 밀란을 사들인 뒤 이 팀이 승승장구하자 우리는 이탈리아를 AC 밀란처럼 만들 것이라고 말하며 지지자들을 규합했다.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 구단은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대변한다. 이로 인해 프랑코 총통 때 갖은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 팀의 팬들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처럼 경기장 밖에서 분노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를 카탈루냐인 특유의 실용주의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보수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의 기자로 축구광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감각이 돋보이는 구체적 사례와 인터뷰로 축구를 발가벗겼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축구처럼 세계화된 스포츠도 갈등의 대리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세계화는 허구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다. 원제는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2004년).



허 엽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