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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잃어버린 사회를 찾아서'

Posted July. 25, 200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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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20여명을 살해한 범죄를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보다 충격적인 일은 그런 끔찍한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이 대체로 무덤덤하다는 점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아 싸우기 바쁘다 보니 정작 고민해야 할 사회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한 인간의 분노와 적개심이 그처럼 깊은가도 큰 문제고, 그런 분노와 적개심을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손쉽게(?) 표출한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헝가리 출신의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는 대변혁이란 책 한 권으로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 책에서 폴라니는 19세기에 걸쳐 시장경제가 출현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해 냈다.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자기 조절적 시장의 출현이라는 명제를 세운 것이다. 정작 중요한 점은 폴라니가 시장경제의 이상적 체제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 울린 경종이다. 그 체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위상을 잔인하게 부정하면서 악마의 맷돌처럼 사회를 원자화된 개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폴라니에게는 사회의 발견과 해체된 사회의 복원이 주된 관심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다. 그 결과 중산층 해체와 사회적 양극화가 초래되었다. 남미형 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난 결정적 계기였다. 사회는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걸어 원자화된 개인들이 급증했다. 이 개인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불어넣는 정책을 경기부양이랍시고 마구잡이로 펼쳤다.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해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사회 해체의 노선과 도덕적 해이라는 물결을 돌릴 수 없었다.

해체된 사회, 좌절당한 개인들, 자기 일을 남 탓으로 돌리는 도덕적 해이의 만연, 사회 복원에 더딘 국가, 이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제2, 제3의 유영철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된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잃어버린 10년도 찾아야 하지만, 잃어버린 사회도 찾아야 한다.

이 수 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학 leesh@kyungnam.ac.kr

오명철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