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시작한 한국 TV가 컬러시대를 거쳐 디지털 TV(DTV)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이달 중으로 시청자들은 현재의 아날로그 TV보다 56배 더 선명한 화질과 CD급 음향을 제공받게 된다.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도 종전 4 대 3에서 영화와 같은 16 대 9로 늘어난다. 수도권과 5대 광역시에서는 다음달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을 고화질(HD) 방송으로 시청할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 장면은 물론 땀과 눈물, 거친 숨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렌다.
아날로그 TV와는 달리 DTV는 양방향 정보 데이터 방송이 가능하다. 드라마나 쇼를 보다가 배우나 가수의 신상정보, 소품 등에 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전자상거래나 정보 검색도 가능하다. 한마디로 PC가 TV로 들어오는 셈이다. 하지만 먼 데서 볼 때는 절세의 미인이었으나 가까이에서는 실망스러운 용모인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얼굴의 성형자국과 여드름 하나까지 선명히 드러나는 고화질 화면 때문에 의외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도 있다.
세계 디지털산업은 지금 표준화 전쟁 중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표준화로 채택되지 못하면 사장()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HDTV 기술에서는 미국에 앞섰으나 이를 세계적인 디지털 방식으로 표준화하는 데 실패해 낙오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 일본에 자국 및 세계시장을 송두리째 내준 미국이 디지털기술을 통한 세계시장 장악을 목표로 업계와 학계가 총력전에 나서 의도적으로 일본을 왕따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언어에 이어 기술표준으로 세계를 장악해가고 있다.
전 세계 DTV 시장규모는 2005년 220억달러, 2006년 330억달러, 2007년 5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한국은 전 세계 DTV 관련 특허기술 1만632건 가운데 33%인 3462건을 보유하고 있는 최다 기술강국. 그런 점에서 지난 4년간 정부와 방송사의 대립으로 전송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새로운 기술의 채택에는 반드시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대가로는 너무 비싼 수업료를 물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