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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말과 여자

Posted March. 21, 20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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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여자를 터부시해 온 것은 동서양이 공통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 속담은 그래도 양반이다. 위대한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때론 해괴한 논리로 뜨악하게 했는데, 여성이 말을 많이 하면 자궁이 말라 버린다는 논리가 그중 하나였다. 미국의 하원의원을 지낸 패트 슈뢰더는 출세한 여성의 가정사를 들먹이는 정적들의 공격에 나는 뇌도 있고 자궁도 있으며, 둘 다 지극히 정상이다라고 맞받아쳤다던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는 말이 좋아 민주주의지 여성과 노예를 철저히 배제한 남성시민 위주였다. 요즘으로 치면 고액 학원강사에 해당하는 소피스트들로부터 달변의 설득술을 배운 사람들만이 지적인 우위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 말은 돈이었고 권력이었다. 일단의 페미니스트들은 말하는 여성을 터부시하는 전통에는 말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소유하려는 남성들의 음모가 숨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녀나 무당처럼 말과 주술로 먹고사는 직업을 천시한 전통도 그런 거대한 음모론에서 뿌리를 찾는다.

요즘은 교육받고 언변이 좋은 여성들이 넘쳐 나기 때문인지 여성의 말이 오히려 각광받는 시절이 되었다. 여성의 하이 톤 목소리가 남성의 목소리보다 전달력이 뛰어나며, 여성의 친근한 내러티브 방식이 남성의 논쟁적인 이야기 구성보다 대중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할머니처럼 잘근잘근 이야기하는 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치밀한 논리로 무장한 당시 월터 먼데일 후보를 디베이트에서 보기 좋게 누른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조지타운대의 언어학자 데버러 태넌 박사는 여성은 화합을, 남성은 권력을 추구하는 화법을 구사한다는 이론을 설득력 있게 펴낸 책으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기도 했다.

주요 정당들이, 그것도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모두 여성을 대변인으로 기용했다. 여성 파워의 약진인지, 남성들의 전략적인 활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도 여성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정치권에서 여성 대변인의 활약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빼어난 전달력과 화합의 언어로 의사소통 부재의 정치권에 맑은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박 성 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

shpark1@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