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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출신'은 평생의 굴레인가

Posted October. 29, 200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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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출신에게 대기업 문은 넘지 못할 높은 벽인가.

본보가 실시한 취업 실험 결과 실력을 평가하는 면접이나 필기시험이 아니라, 서류전형 단계부터 지방대 출신은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방대 출신의 서러움=취업 실험에 참가한 유모씨(27). 그는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어려워 재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또 등록금이 부담돼 사립대가 아닌 국립대를 선택했다.

그가 다닌 학교는 지방대였지만 국립대인 데다 지명도도 높은 편이어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기회가 올 줄 알았다. 미8군에서 카투사로 복무하며 영어 실력도 쌓았고 독일어와 일본어 등 제2외국어도 배웠다.

그러나 실험 결과 8곳의 회사에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자 유씨는 낙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번 실험 말고도 지금까지 수십 군데의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한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며 우리 같은 지방대 출신에게 기회가 오겠느냐고 체념했다.

자신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유씨는 내가 면접관이라도 조건이 같으면 명문대 출신을 뽑겠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는 잘 되지도 않겠지만 설혹 취직이 된다 해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부담을 안고 평생 살아야 할 것 같다면서 대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학원강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2월 다른 지방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모씨(26)는 실험 결과를 듣고 고등학교 때 성적이 평생 굴레가 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고교 시절 몸이 약해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며 대학에 들어간 뒤 2학년 때부터 매일 도서관에 나가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등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부하는데 입사시험에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암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씨도 지난해부터 대기업 10여곳에 원서를 넣었으나 한 곳을 빼고 모두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반면 명문대 출신 성씨는 실험 결과에 대해 과거보다 요즘 취업 환경이 열악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출신학과가 명문대 인기학과이기 때문에 취업이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 해명=현실이 이런데도 두 지원자가 입사원서를 넣은 8개 기업은 대부분 학력 차별은 절대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다만 현대-기아차 인사담당자는 서류에 적는 모든 것이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해 출신 대학도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고, 두산상사도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학교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6개 기업은 실제 회사 서류전형 통과자 중 지방대 출신이 적지 않다며 출신 대학은 선발 기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전문가 진단 및 대책=전문가들은 이번 취업 실험 결과에 대해 한결같이 대기업 학력차별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박사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잠재능력까지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에 출신 대학 등 외적인 조건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이 출신 대학 외에 실무 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력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지방대생의 심리적 열등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연을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 학벌 철폐를 위한 시민 모임인 학벌 없는 사회 홍훈(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대표는 기업이 명문대 출신을 뽑아야 같은 학교 출신의 공무원 등 주요 인사들로부터 얻어 낼 게 많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우선 정부부터 학벌 철폐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력 있는 지방대생을 등용하는 등 학연을 뿌리 뽑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강명 전지원 tesomiom@donga.com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