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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유엔

Posted March. 11, 200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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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기로에 섰다.

이라크 무력 제재 결의안에 대한 승인 여부를 놓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끝내 2차 결의안을 거부할 경우 유엔 무용론()을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유엔은 식량이나 지원해주는 인도적 지원기구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파이낸셜 타임스는 11일 특집기사에서 유엔의 미래를 전망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미국과 영국의 선택은 두 가지. 유엔의 승인을 얻기 위해 재도전하거나 유엔의 도움 없이 일방적인 전쟁에 나서는 것.

데이비드 말론 전 유엔 주재 캐나다 대사는 후자의 경우 미국은 유엔에 악감정을 갖게 되고, 앞으로는 아예 유엔을 배제한 채 불량정권 교체와 선제공격이라는 일방주의를 더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냉전 종식 이후 절대 우위의 군사력을 등에 업은 역사상 초유의 초강대국 앞에서 유엔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음을 입증해주는 시나리오다. 유엔의 핵심 기능인 집단안보 개념은 휴지조각이 된다.

미국이 안보리 이사국 9개국 이상의 찬성표를 얻고,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유엔의 위상이 깎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존 러기 전 유엔 사무총장 자문관은 분석했다. 미국이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통해 찬성표를 얻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유엔의 적법성과 도덕성에 흠집이 난다는 것.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엔의 이 같은 위기는 처음이 아니며, 위기마다 유엔이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는 낙관론을 폈다. 유엔 안팎의 분석가들은 유엔은 내일 쓰러져도 다음날 다시 일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안보리 외에도 이미 세계식량계획(WFP)이나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유엔 아동기금(UNICEF) 등 많은 유엔 기구들은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톰 프랭크 뉴욕대 국제법 교수는 미국이 유엔에서 벗어날 경우 현실적으로 실익이 없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유엔이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미국을 견제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엔은 미국에 맞설 대안적 거대세력이 될 것이라고 프랭크 교수는 전망했다.



곽민영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