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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가 안전운전할 사람인가

Posted December. 01, 200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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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서 안전띠를 매지 않은 운전자와 단속경찰관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관이 선생님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매야 하는 안전띠를 안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목소리가 유난히 큰 운전자는 삿대질을 해가며 이렇게 대꾸한다. 이 양반아, 내 안전 내가 책임지는 거야. 당신은 당신 안전이나 챙기라고.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본 실제 장면이다.

그렇다. 사고가 나서 죽어도 안전띠를 안 맨 사람이 죽지 경찰관이 대신 죽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는 운전자의 말이 맞고 그래서 내 안전 내가 포기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따위 볼썽 사나운 논쟁이 벌어질 수 없다. 안전띠를 매야 하는 이유가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안전띠 불편하다고 목숨까지 저당 잡히는 저따위 어리석은 사람은 없어져도 그만이니까 단속 말고 내버려두라고 감정적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로 한 사람이 희생될 때 발생하는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은 우리나라의 경우 약 3억원이라고 한다. 안전띠를 안 맨 사람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국민이 골고루 나눠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인명도 중요하지만 바로 이 같은 경제적 손실 때문에 미국은 안전띠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는 그래도 낫다. 최고경영자가 회사를 잘못 이끌어서 부도를 낼 때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은 그보다 수백배 또는 수천배로 커질 수 있다. 부실경영을 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무너진 기업들의 부채를 대신 갚느라 회사 경영과 전혀 관련 없는 여타 국민이 당하고 있는 지금의 고통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그 회사가 잘 될 때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오늘까지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한 배 반에 해당하는 150조원의 공적자금이 경영자들의 부실 운전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퍼부어졌다. 그나마 이 정도로 상황이 깨끗이 정리된 것도 아니어서 앞으로 또 얼마나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적자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진 정부는 요즘 들어 국채를 차환발행해 그 천문학적 경비를 메우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일 저지른 사람 따로 있고 뒷감당해야 할 사람 따로 있는 것도 억울하지만 도저히 당대에 갚지 못할 만큼 빚이 커지는 바람에 그 부담을 우리 다음 세대까지 지고 살아야 한다는 데는 말문이 막힌다. 물론 우리 아래 세대들은 그런 부실기업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났거나 또는 태어날 존재들이다.

국가부채가 이런 상태로 늘면 불쌍한 우리 자손들은 아마도 현재의 우리나라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중간쯤 되는 경제수준의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대를 이어 전국민에게 고통을 줄 공적자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일부에서 줄줄 새어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는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울화가 치민다.

기업인의 경영 잘못이 그렇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면 국가 경영을 잘못했을 때의 손실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이건 개인의 교통사고와 기업의 부실에 따른 손실 비율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렇게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대통령 자리를 놓고 지금 정치권에서 다투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노라면 나라의 장래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다른 일 안해 보고 평생을 오로지 투쟁으로 일관해 온 사람에게 나라의 안전 운전을 마음놓고 맡길 수 있을까. 코앞의 이익에 눈멀어 변절을 일삼던 약삭빠른 존재에게 국가 경영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은 또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불행한 것은 이들 모두가 자신들이야말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자격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선거에선가 품질이 턱도 없는 후보를 두고 항간에서는 그가 낙선하면 집안이 망하고 그 사람이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집안 망하는 것이야 관계없지만 유권자가 잘못 선택해서 나라가 망하면 그 책임은 찍은 사람에게도 있다. 이제부터 일년 동안 우리 국민이 누가 안전 운전할 사람인지를 두 눈 부릅뜨고 유심히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규민(논설위원)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