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러 ‘핵심 보급로’ 크림대교 폭발… “푸틴에 재앙”

러 ‘핵심 보급로’ 크림대교 폭발… “푸틴에 재앙”

Posted October. 10, 2022 08:01,   

Updated October. 10, 2022 08:01

ENGLISH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유일한 다리인 크림대교에서 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이 일어나 다리 일부가 붕괴됐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 핵심 보급로일 뿐 아니라 원래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2014년 강제병합한 것을 상징하는 크림대교가 무너지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고 외신들이 분석했다.

 러시아 당국과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경 러시아 본토에서 크림대교를 통해 크림반도로 향하던 트럭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크림대교 크림반도행 차량용 교량 상판 수십 m 구간이 무너져내리며 도로가 끊겼다. 차량용 교량 옆의 철도 교량에도 불이 옮겨붙어 석유를 싣고 러시아에서 크림반도로 향하던 화물열차 유조차량 7량이 폭발했다. 사망자는 3명으로 트럭 운전자와 폭발 당시 트럭 옆을 지나던 차량 승객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익명의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SBU가 이번 폭발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의 트럭 폭탄이 폭발했다고 했다.

 크림대교는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전선에 있는 러시아군에 병기와 탄약 등 군수품과 연료를 보급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2018년 이 대교 개통 행사에서 직접 트럭을 몰고 대교를 통과했다. 그만큼 러시아에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푸틴의 왕관 보석 위로 불덩어리가 굴러떨어졌다”며 “푸틴에게 전략적, 상징적 재앙”이라고 했다.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8일(현지 시간) 발생한 크림대교 폭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내몰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남부와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 점령지를 속속 탈환하는 등 전장 흐름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군수물자 핵심 보급로가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전황이 더욱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70세 생일 바로 다음 날 2014년 크림반도 강제방협의 상징과도 같은 크림대교가 붕괴하는 수모를 당한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동원해 복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러시아군 전쟁 능력 타결 불가피”

 크림대교 폭발 이후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잘 담겨 있다. 오전 6시경 크림대교를 통해 러시아에서 크림반도로 향하던 한 화물트럭에서 갑자기 섬광과 함께 새빨간 화염과 불꽃이 터져나왔다. 화염은 크림반도행 4차선 차량용 상판 뿐 아니라 맞은편 차량용 상판과 가장자리에 있는 철도용 상판까지 완전히 뒤덮었다. 폭발이 발생한 지점 앞뒤 수십 m 교량 상판이 무너져 내렸으며 철로와 이를 지나던 15량짜리 화물열차에도 불이 붙었다. 온라인에는 새카만 연기를 뿜으며 불타고 있는 크림대교를 찍은 동영상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화재 진압을 마친 러시아 당국은 크림대교 철도 동행이 이날 오후 8시부터 재개될 예정이며 차량 통행 역시 무너지지 않은 반대쪽 교량을 이용해 통행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사고로 트럭 운전사를 비롯해 폭발 당시 트럭 주변 차량에 탑승한 있던 남녀 1명 등 3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트럭 운전사의 신원이나 상태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트럭에 실린 폭발물 종류와 트럭 운전사가 폭발물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서방 외신들은 이번 폭발로 러시아군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고 보고 있다. 크림대교는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유일한 육로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크림대교 철도를 이용해 헤르손주(州)와 자포리자주에서 전투 중인 부대에 병기와 탄약, 연료 등을 운송해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멜리토폴을 지나는 철도를 이용하거나 배나 항공편을 이용해 군사물자를 보급하는 차선책도 있지만 안전성과 수송용량 등을 따졌을 때는 크림대교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은 2월 전쟁 발발 이후 꾸준히 크림대교를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이어왔다. NYT는 “크림대교 통행에 지장이 생길 경우 우크라이나 남부지역 러시아군의 능력에 큰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푸틴, 보복 수단으로 핵무기 동원 우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번 폭발이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SBU는 폭발 이후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유명 시인의 구절을 인용해 “새벽녘 다리(bridge)가 아름답게 불타고 있다”며 “크림반도의 나이팅게일이 SBU를 맞이한다”고 썼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이날 트위터에 “크림, 다리, 시작”이라고 적은 뒤 “불법적인 것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고 적었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에 불타는 크림대교 사진과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대통령님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부르는 장면을 합성한 영상을 올려 전날 70세 생일을 맞은 푸틴 대통령을 조롱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당황한 눈치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번 폭발이 러시아군 보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크림반도 거주민에게 1인당 3kg까지만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70세 생일 다음 날 자신의 상징물과도 같은 크림대교가 공격을 당하면서 더욱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영국 가디언지는 “미 자유의 여신상(93m)보다도 큰 크림대교는 러시아 언론에서 ‘세기의 건축물’로 불린다”라며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인프라 시설 프로젝트의 왕관에 있는 보석”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크림대교가 크림반도 병합을 넘어 ‘잃어버린 러시아’를 복원한다는 야망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 5월 다리 개통 직후에 직접 덤프트럭을 몰고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를 동원한 극단적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NYT는 “크림대교 파괴는 푸틴 대통령의 지휘력과 러시아 내부 통제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CNN도 이번 폭발 사고를 두고 “푸틴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을 돕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