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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라거만 구별할 줄 알아도 당신은 ‘맥주 고수’

에일-라거만 구별할 줄 알아도 당신은 ‘맥주 고수’

Posted May. 14, 2016 07:23,   

Updated May. 14, 201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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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맥주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라거’와 ‘에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라거는 저온에서 오래 발효한 맥주이고 에일은 고온에서 짧은 기간 숙성시킨 맥주다. 에일은 재료의 향이 잘 느껴지는 반면에 라거는 맑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한국 대기업이 생산해 온 맥주는 라거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라거가 강세였던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원래 동네마다 소규모 양조장이 있었지만 1919년 금주법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공약대로 금주법을 폐지했지만 대형 주류업체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이때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한국 맥주와 느낌이 비슷한 아메리칸 라거다.

 반면 영국과 독일에선 꾸준히 지역의 소형 양조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거대 자본이 소형 업체를 빨아들이는 인수합병이 활발한 미국과 달리 소형 업체의 명맥이 그대로 유지되는 게 유럽 수공업의 풍토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역 양조장에서 만들어 낸 맥주는 에일형 맥주였다.

 그런데 1979년이 되자 맥주의 지형도가 바뀌게 됐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역 양조업체 활성화를 위해 홈브루잉으로 생산한 맥주를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면서부터다. 실험 정신이 강한 젊은이들이 유럽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에일 만들기에 나섰다.

 이때부터 미국 수제맥주의 역사가 펼쳐졌다. 집에서 만들면서 취향대로 바닐라, 커피, 과일 같은 첨가물을 넣은 개성 강한 에일 맥주가 탄생했다. 유럽의 전통적인 에일은 맥아 맛이 강한 에일이었다면 미국에서는 홉 향이 진한 ‘미국식 에일’이 탄생했다. 현재 미국의 수제맥주 마니아는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세계 최대인 미국 소비자의 취향이 변하다 보니 맥주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글로벌 주류회사 AB인베브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구스아일랜드비어컴퍼니, 골든로드브루잉 등 수제맥주 업체 5곳을 인수했다. 시장 조사 업체 민텔의 조니 포시스 애널리스트는 “대형 맥주 제조사들이 수제맥주 회사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맥주 문화가 발달한 이웃나라 일본에선 서양식 수제맥주가 붐을 일으키진 못했다. 지역 양조장이 많고 맥주 맛도 정평이 난 일본에서 어찌된 일일까. 일본엔 오래전부터 특정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개성 강한 지역 맥주인 ‘지비루’가 있었다. 대형 주류업체에서 생산하는 맥주도 10∼20가지나 된다. 편의점과 독점 계약을 맺어 스페셜 맥주를 내놓거나 계절 한정 상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미 선택지가 많기 때문에 굳이 수제맥주를 만들어 먹으려는 마니아층이 적은 것이다.

 우리나라 수제맥주는 미국의 30년 전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 한국도 미국처럼 한때 지역 양조업이 활발했지만 산업화를 거치며 소수 대형 주류회사에 패권이 넘겨졌다. 막걸리 같은 전통주는 지역별로 개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맥주는 라거 외에 다른 종류가 발달할 시간이 없었다. 최근에야 개인 양조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