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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 유일호의 변신

Posted January. 15, 2016 07:56,   

Updated January. 19, 201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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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경제부총리로 1964년부터 3년 5개월간 재임한 장기영은 별명이 많았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 왕초, 보스, 탱크, 불면불휴() 같은 말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때로 독선적이란 비판도 받았지만 추진력과 정교함을 갖춘 리더십은 금리 현실화, 독일 차관 유치, 경제 자립 같은 굵직굵직한 정책을 성공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퇴근 시간 이후 주요 경제장관과 금융기관장 등을 부총리 집무실 옆 소회의실(이른바 녹실)로 예고 없이 소집했다. 낮엔 부처 일을 해야 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녹실 회의가 몇 시간씩 계속되면 장관들은 배고픔과 피곤에 지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와 예산이나 정책 협의를 할 때도 장기영은 초저녁엔 급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밤늦게 돌아와 만사가 귀찮아진 의원들을 설득해 정책을 관철시켰다. 회의에서 자기 의도대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미리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만반의 준비를 다했던 장기영의 고난도 전술이었다.

유일호 신임 경제부총리는 성격이 무난해 별명이 순둥이다.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국책 연구기관을 거쳐 2008년 정치인으로 변신했지만 파이터와는 거리가 멀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등 1000여 명의 경제경영행정학자들이 2004년 노무현 정부와 정치권의 반()시장경제 및 포퓰리즘 행보를 비판하는 경제 시국선언을 발표했을 때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유 부총리는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그제 취임사에서 개혁 성공을 위해 백병전도 불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성룡의 징비록에서 인용한 징비나 분투 같은 단어를 쓴 것도 종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낮춘 어제, 경제부처들의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절박한 위기의식이나 눈에 띄는 대책을 찾긴 어려웠다. 유 부총리가 순둥이 아닌 파이터로 변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경제의 재도약을 가로막는 각종 적폐와 정면으로 맞서 성장엔진을 다시 살릴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