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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굴기 과시한 열병식과 박 대통령의 선택

중국의 굴기 과시한 열병식과 박 대통령의 선택

Posted September. 04, 201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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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행사는 경제대국 중국이 군사굴기(굴)를 내외에 과시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세계가 기억할 것이다. 중국은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 본토에 도달할 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둥펑-31A와 미 태평양 항공모험 전단에 위협적인 항공모함 킬러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둥펑-21D 등 자국산 최첨단 무기를 대거 공개했다. 칼같이 기강이 잡힌 1만2000 명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벌인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49개국 60여 명의 외국 지도자들이 톈안먼 성루에 올라 참관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쪽,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 자리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중국은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참담히 무너졌던 굴욕적 과거를 딛고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도광양회(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국력과 자부심을 세계에 펼쳐 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패권주의를 추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군 규모를 30만 명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지만 서방에서는 오히려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인다.

부상()하는 중국, 지도력을 재구성해 나가는 미국, 정상화를 추구하는 일본, 복귀를 희망하는 러시아, 그리고 불안정한 북한.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 경부터 미중 국방비 규모가 유사해지는 2030년 중반까지 G2는 전략적 경쟁과 협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미중 갈등 틈새에서 국익을 챙겨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고 있다면 한국은 동북아를 화해와 협력으로 이끄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톈안먼 위에서 중국군의 사열을 받은 박 대통령의 모습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전승절 하루 전인 2일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항복 문서에 서명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태평양전쟁의 종전으로 새로운 장이 시작된 미일관계는 화해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시 주석과 13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푸틴 대통령은 아시아에 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뒤집으려는 국가가 있다고 일본을 비난함으로써 굳건한 미일동맹에 중러 신()밀월시대가 맞서는 장면을 연출했다.

박 대통령은 전통적 한미동맹 못지않게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중국과의 우호 증진도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라 베이징을 방문하는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동맹인 한국이 이제 중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중국 경도론()이 현실화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도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필요한 만큼 박 대통령은 글로벌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아래 국익을 위한 외교의 당위성을 우방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승절 행사는 변화하는 북-중 관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과거 김일성이 두 번이나 마오쩌둥 바로 옆에서 열병식을 참관한 톈안먼 성루에 이번엔 최룡해 노동당 비서만 첫줄 맨 가장자리에 섰을 뿐이다. 끝내 불참한 김정은은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열병식에서도 깍듯한 예우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빛바랜 북-중 관계에 격세지감()을 느꼈을 법 하다. 한중 정상이 의견을 모은 6자회담 재개에 응하고 핵을 포기하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림으로써 김정은의 북도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 연말까지는 정상외교 시즌이다. 이달 말엔 미중 정상회담이, 다음달 16일엔 한미 정상회담이 각각 열린다. 10월말 경엔 한중일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고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도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가 잇따른다. 박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체제를 다지고, 역사 왜곡 문제로 얼어붙은 한일관계도 복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권국으로서 당당히 국익을 도모하되 동맹과의 핵심 가치 공유도 중시하면서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호화판 잔치에서 분위기를 살리는 손님 역할을 한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외교의 새 지평을 확실히 열기 위해선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외교적 부담을 안고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데 따른 손익 계산이 플러스로 나오길 국민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