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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앉아 쏴~

Posted November. 29, 2012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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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혼한 직장인 오모 씨(31)는 요즘 집에서 소변보는 습관을 바꿨다. 신혼 초 좌변기 앞에서 서서 소변을 봤더니 아내가 변기 주변에 소변이 튀어 청소하기도 힘들고 냄새도 심하다며 잘나가는 연예인도 아내를 위해 앉아서 본다는데 당신도 따라해 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 씨는 남자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사실을 털어놨다. 강요에 못 이겨 30년 습관을 바꾼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주변 반응은 의외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혼 때 아내를 꽉 잡아야 한다. 남자 망신시키지 말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지만 곧 물꼬가 바뀌었다. 부장 고모 씨(49)가 아내와 딸이 소변보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줘서 앉아서 일 본 지 몇 년 돼서 이젠 그게 편하다고 고백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이 나도 실은 바꿨어라며 고백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가정에서 서서 쏴 대신 앉아 쏴를 택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아들에게 앉아 쏴를 교육하는 어머니, 남자아이에게 앉아서 소변보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유치원까지 등장했다. 서서 쏴는 미세한 소변 입자가 튀어 좌변기 주변의 칫솔까지 오염시키고 악취를 유발시켜 청소를 어렵게 만든다. 반면 앉아서 소변을 보면 밖으로 이런 불편이 없고 아래 위층에도 들리지 않는다.

10년 전부터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라는 문구를 명함에 넣어 이 운동을 펼쳐온 공무원 김현수 씨(55)는 앉아서 소변 볼 때의 장점을 설명해 주니 주변 사람 절반가량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젊은 예비부부나 신혼부부에겐 남편의 앉아서 소변보기 약속이 신()혼수품목으로까지 떠올랐다. 동아일보가 결혼정보업체 선우에 의뢰해 26, 27일 온라인에서 20, 30대 미혼남녀 각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남성 230명(46%)이 결혼 뒤 배우자를 위해 앉아서 소변을 보겠다고 답했다. 설문에 응한 남성 중 85명(17%)은 이미 앉아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웅진 선우 대표는 가정에서 여성을 배려하는 남성들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라고 말했다.

아직 서서 쏴를 고집하는 저항 세력도 아직 만만치 않다. 직장인 강모 씨(33)는 아내가 남편을 우습게 보니 소변까지 간섭하는 것며 지퍼를 놔두고 아예 바지를 벗으니 불편하고 잔뇨감이 심하다고 불평했다. 설문조사에서도 남성의 약 40%가 앉아 쏴를 부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이윤수 비뇨기과 전문의는 앉아서 소변을 보면 요도괄약근이 팽팽해져 섰을 때보다 잔뇨 배출에 효과적이다며 화장실 위생, 여성의 불쾌함을 고려하면 앉아서 보는 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앉아 쏴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독일 바이에른 주에 거주 중인 박모 씨(28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들이 이렇게 교육시키다 보니 독일 남성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서서 소변보기를 반대하는 단체가 등장할 정도로 논란이 일었다.

가정의 의사결정 과정이 가장 중심에서 가족 간 협상으로 바뀐 것도 이 현상이 떠오른 이유로 꼽힌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적 영역에서 여성 목소리가 커진 세태가 반영됐다며 가사노동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편리함을 존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