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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또래가 해결하는 왕따 폭력

Posted January. 06, 20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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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중 1학년 김철수(가명) 군은 2011년 1학기 초부터 왕따였다. 말수가 적은 대신 종종 혼잣말을 하곤 해 놀림을 받았고 급기야 일부 학생으로부터 따돌림 괴롭힘을 당했다.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같은 반의 이동용 군이었다. 이 학교의 또래중조()인으로 지명된 동용이는 양쪽 학생들을 만나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철수는 얼마나 괴로운지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다른 학생들은 철수를 왜 왕따시키게 됐는지 털어놨다. 철수의 말을 듣고 이들은 장난삼아서 재미로 그랬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철수도 내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철수와 다른 학생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다. 지난해 10월 용인시 서원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학생 5명이 다른 여학생 한 명을 괴롭히자 같은 반 또래중조인 고효신 양이 나서서 화해를 유도했고 이후 잘 지내게 됐다.

경기도의 10개 중고교는 작년 또래중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또래중조란 왕따, 싸움, 괴롭힘 등이 있을 때 급우가 나서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중재 조정하는 활동이다. 각 반에 한 명씩 선정돼 30시간의 갈등해결 훈련을 받은 후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지난 반년동안 학교당 평균 10건의 문제를 해결했다. 1983년 미국 뉴욕의 브라이언트 고교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다른 어떤 대책보다 효과적이어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또래중조의 성공률은 86%로 전문중조인의 성공률 80%보다 높다.

학생들끼리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급우다. 교사나 부모에게 말 못하고 혼자 끙끙댈 때 가장 먼저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기에 화해를 유도하면 해결도 쉽다. 부천 정산고의 P 군, 일산고의 L 양 등은 이 역할에 보람을 느껴 장차 갈등해결전문가의 길을 가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강영진 성균관대 교수(갈등해결학)는 학생들이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의외로 문제를 잘 해결한다며 괴롭히는 쪽 학생에게 중조인 역할을 맡기는 것도 아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허 승 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