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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세번째 위기론 신경영 뛰어넘을까

이건희 회장의 세번째 위기론 신경영 뛰어넘을까

Posted July. 18, 201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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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호텔의 대형 행사장.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사진)의 얼굴은 싸늘했다. 이 회장을 수행한 전자전기 계열사 임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들 앞에 펼쳐진 것은 당시만 해도 첨단기술의 집합체였던 VTR를 비롯해 TV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각종 가전제품이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소니 도시바 GE 월풀 등 세계적 가전 메이커들의 제품 수십 개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한 달 전 LA의 가전제품 매장을 둘러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팽개쳐져 있는 삼성 제품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이 지시해 만든 자리였다.

이 회장은 경쟁사 제품을 부품까지 샅샅이 뜯어가며 삼성 VTR는 도시바 VTR보다 부품이 30% 많은데 가격은 오히려 30% 더 싸니 경쟁이 되겠느냐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어 (적당히 안주하려는) 2등 정신을 버려라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성공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의 모태가 된 전자부문 수출품 현지 비교평가회의의 한 장면이다.

이 회장의 경고는 같은 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뤄진 신경영 선언으로 이어졌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이 회장의 일성()은 삼성전자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LA 회의가 기폭제가 되어 삼성은 신경영 선언과 함께 대전환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삼성전자는 이 비교평가회의를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국내에서 개최했다. 삼성전자의 가전, 휴대전화,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각종 완제품과 부품을 경쟁사의 신제품과 철저히 비교, 분석하는 자리다.

올해 전시회는 18일부터 29일까지 경기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에서 진행된다.

이 전시회에 삼성과 전자업계뿐 아니라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짐을 벗고 경영에 전념할 것으로 관측되는 이 회장이 4년 만에 직접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2009년을 빼고는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전시회는 2년마다 열린다.

올해 전시회는 2000여 m의 공간을 디지털미디어관 정보통신관 생활가전관 반도체관 LCD관 디자인관으로 나눠 삼성과 소니 파나소닉 샤프 GE 애플 노키아 HP 등의 최신 제품들을 비교 평가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김순택 미래전략실장, 최지성 부회장 등 삼성의 핵심 최고경영자(CEO)들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번 전시회가 더욱 주목받는 까닭은 이 회장이 직전에 참석했던 2007년과 지금의 상황이 위기라는 코드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침체되면서 삼성전자 위기론이 대두됐던 2007년 전시회에서 이 회장은 위기는 기회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2010년 정도면 지금 예측하기에는 힘들 정도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한다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러면서 4, 5년 뒤의 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며 창조경영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회장이 당시 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던 시점인 지금,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는 세계 LCD 경기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줄어든 3조7000억 원에 그쳤다. LCD 부문은 2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다. 또 최근 특허전쟁에 열을 올리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삼성전자를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독점 공급하던 모바일 AP칩의 구매처를 대만 업체로 다변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이 회장이 이번 전시회에서 어떤 화두를 던지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2007년과 2011년의 가장 큰 차이는 이 회장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다. 4년 전엔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자며 다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다면 지금은 이미 위기가 닥쳤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1993년 신경영에 비견하는 강도 높은 대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