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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화에 한식이 없다

Posted November. 12, 200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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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바람에 눌린 한식의 정체성

이번 심층인터뷰에는 롯데호텔서울, 그랜드쉐라톤워커힐, 메이필드, 르네상스서울 등 4곳과 토종 호텔 브랜드인 그랜드앰배서더서울의 조리장급 이상 요리사가 참여했다.

요리사들은 공통적으로 한식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쉽게 말해 한식을 앞세워 세계로 나가기에 앞서 무엇이 한식이냐, 특징은 무엇이냐, 어떻게 만들어야 제대로 된 한식이냐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 심창식 그랜드앰배서더호텔 조리부장(48)은 한식 세계화라고 했을 때 메뉴를 퓨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사실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다면 퓨전이 아니라 외국 식문화 각각의 단계에 적당한 우리 음식을 그대로 끼워넣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랜드쉐라톤워커힐호텔 한식당 온달의 이재옥 조리장(52)은 현재 한식 연구개발(R&D)이 전부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퓨전에만 쏠려 있는데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54)은 우리 식()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것이 한식의 세계화일 텐데 2012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것 자체가 조급증이고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난데없이 떡볶이가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식 스타 셰프 양성이 핵심

요리사들은 또 한식 스타 셰프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타 셰프가 여러 명 나오면 정부가 요란을 떨지 않아도 한식 세계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 이런 점에서 정부도 스타 셰프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2, 3개월짜리 스타 셰프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준비 없이 시작돼 수강생들의 불만이 크다. 연세대와 우송대, 워커힐이 함께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의 한 수강생은 대학 측의 프로그램이 급조돼 형편없었고, 수강생들도 사장이나 기업 관계자 등 스타 셰프 양성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한식 세계화에 한식 요리사가 없다

이춘식 그랜드쉐라톤워커힐호텔 조리팀장(47)은 호텔에서는 주로 외국인들에게 한식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요리사들은 외국인의 입맛과 취향 등을 분석해 한식에 반영하고 있다며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한식 세계화에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식 요리사들이 한식 세계화 추진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한식 세계화 작업이 프랜차이즈 업체를 중심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공무원과 교수, 기업인, 농어업인 등이 포함된 한식 세계화 추진단 위원 35명 가운데서 호텔 한식 요리사는 1명도 없었으며, 추진단을 보좌하는 자문단 33명에도 교수와 기업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을 뿐 요리사는 전혀 없었다.

식약동원()부터 시작을

요리사들은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한식의 정체성은 웰빙 음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금희 조리장은 양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엄선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자체로 웰빙 음식이라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음식과 약은 근원이 동일하다(식약동원)는 선조들의 음식관에서부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자는 것. 웰빙 음식으로서 한식은 해외에서도 긍정적이다.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CJ푸드시스템이 지난해 문을 연 웰리&돌솥비빔밥은 공항 푸드코트 가운데서 매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르네상스호텔 한식당 사비루의 김성태 조리장(48)은 건강식이라는 측면에서 갈비보다는 비빔밥이 가능성이 크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기용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