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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멋 편리함의 극치 나의 애마 스쿠터

Posted October. 12, 200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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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한 청년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3시간 동안 여객기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자니 허리가 아파 오고 몸은 파김치가 됐다. 영국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귀국길에 유라시아 대륙의 바람과 흙냄새를 맡으며 달렸다. 5개월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그리스,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 20개 국가를 여행하고 지난해 10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임태훈(24) 씨의 동반자는 스쿠터(scooter)였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갈 때도, 해발 4000여 m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어 중국으로 갈 때도 스쿠터는 그의 발이 되어 주었다.

스쿠터라는 단어에 중국음식점이나 피자집 배달원을 떠올린다면 아직 스쿠터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 어떤 의미에선 자유를 덜 갈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동변속, 낮고 넓은 발판, 작은 바퀴, 상대적으로 넉넉한 수납공간 등으로 모터사이클(오토바이)과 확연히 구별되는 게 스쿠터다. 시쳇말로 당기면 나가는 편리성이 최고의 장점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와 동해로 여행을 떠나고 전국을 일주하고 있다. 10여 년 전 대학생들이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빌렸다면 지금은 스쿠터를 빌린다.

스쿠터는 젊은이의 전유물은 아니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익(48) 감독은 스쿠터로 갤러리 투어를 즐기는 실용파 라이더다.

단거리 이동을 위해 1912년 군용으로 개발된 스쿠터의 2007년 한국판 이야기는 아기자기 하다.

가고 싶은 곳 맘대로

임 씨는 왜 스쿠터를 골랐을까. 자전거로 영국 일주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좀 더 빠르게 이동하기를 원했다. 속도감을 즐기면서도 여행지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의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승용차나 버스,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점에서 점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여러 교통수단의 틈새에 스쿠터가 있었다. 이륜차가 처음인 그에게 수동으로 변속해야 하는 모터사이클은 부담이 있었지만 스쿠터는 그렇지 않았다. 영국보다 등록비가 싼 독일에서 125cc 스쿠터를 사서 등록했다. 그곳에서 보험을 들고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직접 운전하며 갈 수 있다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일반 관광객들은 가기 힘든 한적한 마을을 직접 찾아 다녔다.

코펠과 침낭, 텐트는 스쿠터 뒤에 싣고, 지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달렸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장소를 만나면 하루나 이틀 더 묵었다가 가는 느긋한 여행이었다. 길을 잃어 숲 속에서 혼자 텐트를 치고 잔 적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프랑스 노부부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기도 한 여행이었다.



허진석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