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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직전교신조종사실수로추락가능성

Posted June. 28, 200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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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짙은 안개까지 겹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한국인 여행객 13명을 포함해 22명을 태운 캄보디아 PMT 항공사의 AN-24기가 시엠리아프에서 시아누크빌을 향해 출발한 지 35분쯤 지난 시간. 보코르 국립공원의 험준한 산악지대가 항로를 가로막은 지점이었다.

2000피트(약 600m)로 날고 있다(조종사)

4000피트(약 1200m)로 날아야 하는 지점이다. 고도가 너무 낮다.(시아누크빌 공항관제탑)

내가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다. 문제없다.(조종사)

이 짧은 대화가 사고 비행기와 관제탑 간 마지막 교신이었다. 교신이 끝난 직후 비행기는 바로 앞의 보코르 산 북동쪽 기슭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구조신호를 보낼 틈조차 없었다. 레이더에서는 비행기 신호가 갑자기 사라졌다.

자만심이 부른 참사=27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확보해 공개한 교신 내용에 따르면 비행기는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사관은 당시 사고 비행기는 규정에 어긋나는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대사관에서 교신 내용을 보고받은 오갑렬 외교통상부 재외동포대사도 관제탑이 여객기 실종 직전 고도가 너무 낮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시아누크빌 공항으로 진입하는 항로 50km 지점에는 해발 1080m의 가파른 보코르 국립공원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다. 산 높이를 감안할 때 비행기는 최소 1200m의 고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사고기의 고도가 이보다 크게 낮은 600m로 운항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조종사는 악천후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현장의 지형 파악에 자신감을 보이며 관제탑의 경고를 무시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사고 비행기 조종사가 니콜라이 파블렌코라는 이름의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보도했다.

더구나 당시 비행기는 정상 항로를 이탈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작업에 참여한 한 군 조종사에 따르면 비행기는 시아누크빌로 가는 항로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비행 중이었다. 이는 비행기가 보코르 국립공원 내의 해발 1000m 되는 추어프놈담레이 산 서남쪽에 부딪힌 점에서 확인된다. 이 때문에 정상 항로를 기준으로 추락 지점을 수색해 온 수색대의 현장 발견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불안 요인=당초 수색 관계자들은 사고를 불러 온 원인으로 악천후를 거론했다. 수색대의 케킴얀 장군은 전날 비행기의 기술적 결함이라기보다는 나쁜 날씨 탓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훈센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고 원인에 대해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기상 악화로 인한 것이라고 악천후 쪽에 무게를 실었다.

과거에도 잦은 사고를 낸 낡은 기종의 안전성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개발된 지 40년이 넘은 러시아제 AN-24는 2005년에도 러시아 북부 바렌데이에서 추락해 29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 PMT 항공사 측은 사고 비행기는 출발 당시 상태가 좋았고, 운항의 기술적 안전 요건을 갖췄다며 블랙박스를 확보해 내용을 판독할 때까지는 사고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블랙박스를 발견하면 캄보디아에 입국한 러시아 항공 전문가들과 협의해 분석 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이날 캄보디아에서 운항되는 모든 여객기를 조사하고 너무 낡은 것들은 비행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이세형 lightee@donga.com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