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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을 삼키는 늪

Posted April. 02, 200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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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중독이 현대인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술, 담배, 마약에 중독된 사람도 있지만 도박, 일, 인터넷게임, 쇼핑, TV 드라마 보기, 음란전화 이용하기, 섹스 등 행위에 중독된 사람도 많다.

뇌 속 도파민이 과다 분비돼 일어나

모든 중독은 도파민 분비와 관련이 있다. 도파민은 사람에게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어떤 물질이나 행위가 뇌 속 쾌감 중추를 자극하면 도파민이 집중 분비된다. 한 번 쾌감을 맛본 사람은 쾌감에 대한 기억에 중독되어 더 나은 쾌감을 찾아 나선다.

도파민은 배고픔을 느끼다 밥을 먹어도 나온다. 골프 칠 때 홀인원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만족감을 느낄 때도 모두 도파민이 활성화된다.

술 담배 마약 도박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은 대부분 짧은 시간에 과다 분비된다. 강력한 도파민 자극에 익숙해지면 일상생활에서 소소히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행복이나 기쁨에 만족하지 못한다.

한 번 느낀 쾌감은 뇌에 저장된다. 쾌감에 대한 기억으로 다시 같은 행위를 시도하지만 내성 때문에 기존보다 더 큰 자극을 줘야 똑같은 쾌감이 생긴다.

가톨릭대 성가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는 담배를 처음 피울 때는 강렬한 자극을 느끼지만 많이 피울수록 자극의 강도가 줄어드는 게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극 추구하고 술 담배에 관대한 사회가 양산

세상이 복잡해지고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생활환경이 점점 자극적으로 바뀌면서 생활 속 중독의 양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같은 자극을 준다고 모든 사람이 중독되는 건 아니다. 가족력이 있을 때 중독에 빠질 확률이 3, 4배 높아진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거나 한 번 무언가에 빠지면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렸던 사람이나 우울, 불안, 허전함에 잘 빠지는 성인이 중독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청소년기에 학대를 받아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아이들도 현실도피를 위해 쾌락중추가 비정상적으로 발달돼 중독에 잘 빠진다. 어릴 때 중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성인이 되어 중독에 빠지기 쉽다. 음주나 흡연도 마찬가지다.

중독은 뇌 질환이다. 도파민 분비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다 보면 내성과 금단 증상이 생기고 결국 사고와 판단의 영역인 이마엽(전두엽)이 변화되어 치명적인 뇌 손상이 생긴다. 이 경우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다. 다만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완치는 안돼도 불편하지 않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도록 조절할 수는 있다.

중독에 빠진 사람에게 단지 정신 차리라고 말로만 경고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병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야 한다.

어떻게 벗어나나

이미 중독에 빠져 있다면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전문가를 찾아가 중독에 이른 원인을 찾고 약물치료와 사고체계를 바꿔 주는 인지행동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

대개 중독은 동시에 일어난다. 술을 마시면 담배 생각이 나는 이유가 쾌락에 대한 기억이 모두 이마엽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코올의존자가 술 대신 담배를 피운다고, 또 도박 중독자가 도박 대신 술을 마신다고 치료가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단지 중독의 종류만 바뀐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쁜 중독 대신 좋은 중독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술 대신 담배가 아니라 등산이 생각나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적, 의학적으로 건강한 행위를 통해 도파민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중독에 빠지면 건전한 교우관계나 가족관계가 사라지고 주변에 같은 중독자만 남는다. 치료를 통해 빠져나왔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소속감을 갖고 운동, 취미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나는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는 일종의 뇌 질환을 겪은 뒤 회복되고 있으며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키우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

(도움말: 가톨릭대 성가병원 정신과 김대진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



하임숙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