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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선전 비서가 도망쳤다고?

Posted January. 27, 20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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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는 정하철(74) 노동당 선동선전비서가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져 민심이 흉흉하다.

간부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정 비서의 흔적을 출판물에서 지우고 있기 때문.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정 비서가 동행한 사진이 있으면 얼굴에 먹칠을 한다. 또 이름이 나오는 대목은 먹칠을 한 뒤 테이프로 봉인까지 하며 직접 쓴 글은 아예 통째로 잘라낸다. 북한 출판물의 대다수는 정치서적인 까닭에 모든 가정이 삭제 대상인 책들을 수십 권씩 소장하고 있다.

복권 가능성 전무=정 비서는 김일성종합대 철학과를 나와 노동신문 논설실장과 중앙방송위원장을 거쳐 2001년 노동당 선전선동부장 겸 선전선동비서에 오른 대표적 선전통. 이는 김 위원장이 1970년대 중반 후계자로 임명받을 당시에 맡고 있던 직책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사상 선전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이 때문에 정 비서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도 빠지지 않고 동행해 온 최측근으로 꼽혀 왔고 북한 최고 훈장인 김일성훈장도 받았다.

그의 신변에 이상설이 나돈 것은 2005년 12월. 당시 일부 언론은 그가 그해 10월부터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외국 망명 보도도 없었다.

일부 소식통은 농촌지원 총동원 때 대낮에 술판을 벌인 방송위원회 직원들을 집중 검열하는 과정에서 그의 과오가 드러나 평안남도 북창군 득창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고 전했다.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과의 갈등 및 숙청설도 흘러나왔다.

그에게 내려진 조치는 반당반혁명분자로 선고돼 북한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출판물 등 모든 기록에서 삭제되는 것. 복권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관련자들, 이른바 곁가지로 지칭되는 김 주석의 후처인 김성애의 혈육들, 간첩으로 몰려 총살당한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비서가 출판물에서 먹칠을 당했다. 이 때문에 북한 정치서적에는 곳곳에 먹칠 흔적을 볼 수 있다. 봉건시대처럼 본인의 부계 6촌, 모계 4촌까지 정치범수용소나 깊은 산골로 추방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매장 이유 오리무중=북한에서 간부들이 매장되는 가장 큰 원인은 술자리 등에서 김 위원장 또는 체제를 비난했을 경우. 정 비서도 여기에 해당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체제를 흔드는 것으로 여겨져 절대 용서되지 않는 중죄다. 최근 주동일 전기석탄공업상이 사석에서 전국 각지에 방치된 (김 위원장의) 초대소 전기를 경제부문으로 돌리면 어떨까라는 말을 했다가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비서가 큰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선전장비 구입에 해마다 막대한 외화를 아낌없이 쓰고 있어 비리를 저질렀을 개연성도 크다.

그러나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을 준비하면서 막대한 외화를 사취하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했던 최용해 전 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도 좌천당했을 뿐 먹칠은 당하지 않았다. 최근 복권한 장성택 노동당 부부장도 마찬가지다. 김 위원장이나 체제 비난과 비교할 때 부패 비리에 대한 처벌은 훨씬 관대한 편이다.

정 비서의 사례는 소위 북한 실세들의 권력이나 김 위원장의 신임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질 만큼 허망한 것임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살지 않으면 언제든지 절대 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말이다.



주성하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