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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통 큰 쇼핑

Posted December. 20, 20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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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보석 시계, 아이그너 벨트, 아테스토니 구두, 금목걸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2001년 5월 4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위조 여권 소지 혐의로 적발됐을 때 착용하고 있던 이른바 명품()들이다. 동반 여성 2명도 루이비통 핸드백, 프라다 구두, 순금 샤넬 액세서리 등으로 몸을 감고 있었다. 북의 지배층 인사들이 명품족으로 알려져 왔지만 실체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는 처음이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지만 김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은 자본주의국가 부유층을 뺨치는 호사()를 누린다. 빨치산 출신들을 포함한 노동당, 군부, 내각의 고위 인사들도 김 위원장 덕분에 금의옥식()을 즐긴다. 지난달 30일 미국이 대북() 수출 금지 사치품 목록을 발표했을 때 외신은 이 조치가 북의 600여 충성가문(loyalist families)에 김 위원장이 줄 선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국과 일본이 대북 사치품 수출을 금지했는데 북의 특권층은 별 애로를 못 느끼는 모양이다. 중국 단둥 시에선 북한 상류층이 현금 5만 달러를 주고 도요타 자동차를 구입하고 금 장신구와 외제 화장품을 구입하는 등 사치품 쇼핑을 즐기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준다는 보디크림이 특히 인기라고 한다. 중국 마카오에 나와 있는 북한 회사들도 여전히 사치품들을 사 보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에선 수많은 주민이 굶주리고 있고 특히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발육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그런데도 특권층이 명품을 탐닉하고 향락에 젖어 사는 것은 북이 표방하는 사회주의적 평등이 새빨간 거짓임을 보여 준다. 이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남한 정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만 탓할 뿐 북의 처절한 양극화에 대해선 입도 뻥긋 않는다. 북한 정권엔 착취당하고 남한 정부엔 외면당하는 북의 2000여만 주민만 억울하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