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권력자를 놓고 친구들과 옥신각신한 적이 있다. 미국 대통령, 또는 소련 대통령을 지목한 아이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625전쟁의 충격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60년대였으니 초등학생들이 유엔을 막강한 권력체로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유엔이 한국을 북한의 공격에서 구해줬고, 유엔을 대표하는 인물이 사무총장이므로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논리가 그럴듯했다.
예전에 아이들이 생각하던 수준은 아니지만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도 세계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191개국으로 늘어난 회원국, 사무국 1년 예산 31억 달러, 뉴욕 유엔본부에 근무하는 직원만 7500명인 조직부터 만만치 않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적 명예도 얻을 수 있는 자리다. 유엔은 세계평화를 위한 기구이니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지탄받을 이유가 없다. 현 총장인 코피 아난은 2001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두 번째 노벨평화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부러울 게 없는 것처럼 보이던 아난 총장이 최근 곤경에 빠졌다. 아들이 이라크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유엔 사업에 관련된 회사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 아난 총장 자신도 아들의 수뢰 의혹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연임에 성공해 8년째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라크 침공을 불법으로 규정한 아난 총장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임기 만료 전에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아난 총장이 위기에 빠지자 아시아가 바빠졌다. 대륙별로 돌아가며 총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아시아인이 후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이미 태국 외무장관을 후보로 결정했다. 국내에서도 2006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 당선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돼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내는 등 한국인 총장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총회 선임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선택한다. 그렇더라도 총장의 세계적 위상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에서 적당한 후보를 골라 도전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